이사야 26장

성경
이사야

심지가 견고한 자

이사야 26장 묵상

중심에 선다는 것의 무게

공동체의 주변부에 머물 때는 삶이 단순합니다. 지도자의 지시를 따르면 그만이고, 때로는 열정적으로 참여하거나 혹은 느슨하게 임할 수도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슬그머니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주변인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주어지지 않기에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공동체의 중심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리더의 자리는 복잡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리더는 구성원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려 애씁니다. 겉으로는 훌륭한 지도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경청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응답하려 노력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리더십은 종종 표류합니다. 이 사람의 의견을 따르다가 저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방향을 바꿉니다. 구성원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리더가 진정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반대편에는 또 다른 극단이 있습니다. 철벽같은 고집으로 무장한 리더입니다. 그는 아무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조언도, 비판도 그의 귀에는 닿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판단만을 신뢰하며 묵묵히 자기 길을 갑니다. 이런 리더 역시 공동체를 답답하게 만듭니다. 중심을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에 불과합니다.

두 유형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말합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한 고집과 어떻게 다를까요?

하나님, 우리의 견고한 성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이사야 26:1)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부를 승리의 노래를 예언합니다. 그들이 노래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견고한 성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읍은 돌과 흙으로 쌓은 요새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성벽이 되시고 외벽이 되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찬양만 들으면 평화롭고 안전한 시대를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예언이 선포될 당시 유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기원전 721년, 막강한 앗시리아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들의 정복 욕망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서진을 계속하던 앗시리아는 이제 애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지막 독립국 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견고한 성이 되신다고 평안히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맹목적 낙관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포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성벽보다 더 확실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확신의 고백입니다.

사실 이 확신에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유다는 이미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극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의 일입니다. 군대장관 랍사게는 항복을 요구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치욕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달려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앗시리아 진영을 치니 18만 5천 명의 군사가 하룻밤 사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녁에는 살아있던 병사들이 아침에는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산헤립과 랍사게는 황급히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진정한 성벽이심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후에 선지자는 확신에 찬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견고한 성이 되셨고, 우리를 둘러싼 철옹성이 되셨으니 그분을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의 평강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하나님이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심지가 견고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 견고함의 근원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앗시리아의 위협 앞에서 주변 나라들은 저마다 생존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혼자서는 대적할 수 없었기에 동맹을 추구했습니다. 먼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손을 잡고 유다에게 제안했습니다. "함께 연합하여 앗시리아에 맞서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동맹을 맺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람도, 북이스라엘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어서 구스가 또 다른 동맹을 제시했습니다. 구스, 애굽, 블레셋이 연합 전선을 구축하며 유다에게 참여를 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도 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 반앗시리아 동맹이 두 개의 큰 축으로 형성되었지만, 하나님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붙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 판단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앗시리아의 군사력 앞에서 어떤 동맹도 맺지 않고 홀로 서 있는다는 것은 자살행위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 손만 붙잡고 따라오면, 내가 너희의 견고한 성이 되겠다. 너희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냐? 하룻밤에 18만 5천의 적군이 쓰러지는 것을. 이제 그것을 본 너희는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심지와 고집, 그 결정적 차이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심지가 견고한 것과 고집이 센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고, 말씀이 명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선지자, 그리고 믿음을 지킨 유다 백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적 동맹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셨을 때, 그들은 그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자기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견고함입니다.

반면 고집 센 사람은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을 고수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소돔이 전쟁에 패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혔을 때,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을 이끌고 가서 구출해주었습니다. 분명한 경고였지만 롯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소돔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고집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완고함, 그것은 결국 파멸로 이어집니다.

노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120년간 방주를 짓는 그를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맑은 하늘 아래 산꼭대기에서 거대한 배를 만드는 노인을 보며 미쳤다고, 고집불통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고집쟁이가 아니라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행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분명합니다.

첫째, 심지가 견고한 것과 고집이 센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진정한 견고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는 것이고, 고집은 자기 생각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노아와 히스기야처럼 말씀을 붙잡는 것이 참된 견고함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완전한 평강을 약속하십니다. 인간적 동맹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한 유다에게 하나님은 친히 성벽이 되셨습니다. 18만 5천의 앗시리아 군대를 하룻밤에 무너뜨리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셋째, 위기의 순간일수록 말씀에 더욱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믿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심지가 견고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고집의 사람이 아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의지는 내려놓고 말씀은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도 심지가 견고한 사람으로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분의 보호하심 가운데 거하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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