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이사야 2장
모든 것의 고유한 목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고유한 의미와 목적, 그 기능이 있습니다. 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집의 기능은 안전과 휴식, 평화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면 그 집에 사는 모든 식구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집니다. 학생들은 학교로, 어른들은 일터로 나아갑니다. 하루 종일 자기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모여듭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피로와 기쁨, 힘들었던 일들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이것이 집이 지닌 본래적 의미와 기능입니다.
그런데 만약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부부끼리 끊임없이 갈등하고 다툰다면, 그 가정의 쉼과 휴식이라는 본래적 기능은 상실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 구성원들은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리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본래적 기능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고 다니며 비가 필요한 곳에 비를 뿌리고, 낮에는 뜨거운 햇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합니다. 그렇다면 성전의 본래적 기능은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우리가 받는 곳이며, 동시에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기도로 올려드리는 곳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예배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의 본래적 기능에 대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타락상을 하나님은 계시로 전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성전이 있는 남유다 예루살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예배는 열심히 드렸지만, 제물 뒤에 숨어서 하나님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물은 많이 가져왔지만 진정한 예배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론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물 뒤에 숨지 말고 나와서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일의 성전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사야 2:2)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은 시온산입니다. 말일에 시온산이 높은 곳에 설 것이고,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여든다고 하셨습니다. 시온산이 높은 곳에 선다는 것은 그 산이 품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높은 곳에 서게 될 것이며, 그곳으로 만민이 모여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성전으로 모여들겠습니까?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이사야 2:3)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 이것은 성전에서 우리가 말씀을 배울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들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함입니다.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 가는 이유는 예물을 드리고 그 뒤에 숨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전의 본질적인 기능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오르는 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성전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가치이자 기능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숨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내 마음을 너희에게 전하고 싶은데, 부디 숨지 말고 나와 함께 교제하고 변론하자" - 이것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그렇다면 하나님과 변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그 말씀이 심령에 임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사야 2:5)
말씀은 빛처럼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지면, 그 말씀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과 감추고 있던 부분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의 조명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비추지 않으면, 말씀 앞에 내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그 말씀을 통해 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거울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지 않으면 나의 약함을 발견할 수 없고, 나의 교만함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악한 길을 가고 있는지, 선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행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임하면 그 말씀의 빛으로 상대방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의 장점도 보이고, 그분을 위해 기도할 제목이 보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빛이 임하면, 성령의 조명으로 이 나라와 공동체, 세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내가 가진 경험으로만 상대를 보고 세상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반드시 실수하게 됩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문제만 많아집니다.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하신 이 말씀은, 그 말씀이 임하면 우리가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강력한 빛이 사울을 둘러쌌습니다. 말씀의 빛이 그를 조명한 것입니다. 그 말씀의 빛을 받고 난 사울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때부터 그는 적극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여호와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행동하는 사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 때문에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고, 강력한 예수님의 빛이 그녀를 비췄습니다. 그러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내려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며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빛을 만나면, 말씀의 빛이 성령의 조명으로 나를 비추기 시작하면,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갈증이 해소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받아 우리가 성전에 올라와서 말씀을 배우자고 합니다. 그러면 그다음 일어날 일은 행동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셀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2:22)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내가 의지하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모두 가치 없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살았던 물질,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것들이 썩어 없어질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성전에서 여호와의 크고 놀라운 빛을 보고 성령의 조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제대로 드린 자, 말씀을 제대로 듣고 묵상한 사람은 헛된 것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 헛되고 헛된 것을 붙잡지 않습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바라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 일을 바라고 계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성전의 본래적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고 그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으로 변화받는 것이 성전의 본질입니다.
둘째, 말씀은 빛처럼 우리를 조명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나 자신과 이웃, 세상을 바르게 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셋째, 말씀을 제대로 받은 자는 헛된 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무가치함을 깨닫고,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가장 본질적인 성전의 기능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주의 전에 나오는 목적이 이 목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무너지고 성전의 본래적 기능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한탄하시며 이사야를 통해 회복을 촉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전에 올라오는 이유가 말씀 듣기 위함임을 깨닫고, 그 말씀으로 나를 비추고, 그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