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실 왕
이사야 32장
삶의 기준과 가치관
인생을 살아가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본질적인 물음입니다. 이는 곧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강조점이 달라지고, 그 강조점은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이 원리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떤 부모는 "공부는 때가 되면 스스로 하게 되니, 건강하고 정직하게 자라라"고 가르칩니다. 또 다른 부모는 "지금은 학업에 집중할 때다. 나머지는 차차 배우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제시한 기준과 강조점을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합니다.
무엇이 참된 진리이고 선인지는 당장 분별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선택한 가치관이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인생 전체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하시고 무엇을 강조하실까요?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실 왕
이사야가 예언하던 당시 남유다는 영적으로 참담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이가 전무했습니다. 왕에서부터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고 앗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집트의 보호를 구하며 동맹국을 물색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사야 32:1)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놀라운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현재의 무능한 왕과는 달리, 장차 오실 왕은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왕은 다름 아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정의와 공의의 본질
여기서 '정의'(미슈파트, מִשְׁפָּט)와 '공의'(체다카, צְדָקָה)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며, 특히 이사야서의 중심 주제입니다.
미슈파트는 율법과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의를 의미합니다. 반면 체다카는 이 절대적 정의가 인간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계명 자체는 율법이며 언약으로서 하나님의 미슈파트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이 실제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실천되느냐는 체다카의 영역입니다.
어떤 이는 겨우 체면치레 수준으로 부모를 모십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 최소한의 의무만 다합니다. 반면 어떤 이는 진심으로 부모의 필요를 살피고,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정성을 다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이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 이것이 바로 체다카입니다.
예수님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 자체는 미슈파트입니다. 그러나 이웃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 가족에 국한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 반대편의 굶주린 이들까지 포함할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하고 실천해야 할 체다카의 영역입니다.
예수님, 완전한 공의의 구현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이사야 32:2)
예수님은 광풍과 폭우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시고, 메마른 땅을 적시는 시냇물이 되시며,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바위 그늘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미슈파트가 이 땅에서 체다카로 완벽하게 구현된 분이십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 개념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자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명확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작은 베풂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분이 곤고한 자에게는 든든한 바위 그늘이 되시고, 메마른 심령에는 생명수가 되시며, 인생의 풍랑 속에서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 시대에는 정의도 공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포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공의가 맺는 열매
"그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이사야 32:16-17)
체다카가 이 땅에 실현될 때 그 결과는 화평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에서 체다카로 구현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옥과 같았던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고, 서로를 미워하던 가족들 사이에 화목이 생깁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장소가 안전과 평안의 보금자리로 변화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정의와 공의를 찾기 어렵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정의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을 체다카로 실천하며 사는 이들은 드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정의를 삶의 공의로 구현해야 합니다. 절대적 정의인 미슈파트를 관계적 공의인 체다카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말씀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공의 실천의 완벽한 모범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론이 아닌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신 그 희생이 진정한 공의의 구현입니다.
셋째, 공의의 열매는 화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할 때 가정과 사회에 진정한 평화가 임합니다. 갈등과 분쟁의 자리에 화해와 치유가, 불안의 자리에 평안이 자리잡게 됩니다.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불신자들의 가치관을 정죄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공의롭게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절대적 정의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아름다운 공의로 꽃피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