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4장

성경
이사야

여호와의 칼과 기다림

이사야 34장

끝까지 가는 시대

과거 학교에서는 학생들 간의 다툼이 있으면 선생님이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 두 학생을 불러 사정을 듣고, 시시비비를 가린 후 서로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게 하고 화해시켰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벌을 세우든지, 체벌을 하든지, 청소를 시키든지 한 후,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일러주고 보냈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 늘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어머니를 불러와야 한다." 학생들은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다짐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연락이 가서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와 다시 다투려다가도, 선생님께 불려가면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다릅니다. 학생들 간에 사소한 다툼이라도 있으면 학교폭력위원회가 자동으로 소집됩니다. 위원회가 개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슬픈 현실은 우리 사회가 갈등을 조절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을 현저하게 상실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간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그것이 말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서로 간의 조율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선 끝까지 갈 때까지 한번 가보자"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학교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간 대화가 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가버립니다. 끝까지 가서 법의 심판을 받으면 그 가정의 모든 식구들에게 피차 상처만 남게 됩니다. 사회 전반이 의견을 조절하고 조율하며 서로 간 생각의 차이를 좁혀갈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과의 조율

그런데 이 문제는 사회 전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의견이 어떻게 처음부터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모든 문제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의견 조율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생각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폭이 넓고 크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줄여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잘 드러나 있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마음을 나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내 자아를 내려놓고 순종하려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그런 노력과 수고를 해야 겨우겨우 하나님 뜻에 나를 조금씩 조금씩 옮겨가고 맞추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절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의견 일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가버리면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처럼 여호와의 칼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가면, 하나님과의 의견 조율을 하지 않고 끝까지 가버리면, 여호와의 그 심판의 무시무시한 칼이 우리 인생을 결국 심판하실 것입니다.

에돔을 향한 시범 심판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은 에돔 족속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이사야 34:1)

에돔 족속을 심판하시는데 열국들을 부르십니다. 민족들이 나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돔 족속 한 족속에 대한 심판인데 열국과 민족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돔 족속 하나만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돔을 심판하는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고 너희는 이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 당시 열국들에게만 주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에돔 족속의 심판은 바로 시범 케이스입니다. 그들의 심판의 모습을 너희가 제대로 보고, 너희도 에돔처럼 살면 이런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 그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이사야 34:2-3)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전체를 향하여 진노하셨는데 에돔을 먼저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에돔의 심판은 열방 모든 민족들이 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모두가 다 큰 죄가 있는데, 너희 모두가 비슷비슷한데, 그런데 에돔부터 먼저 심판하니 너희는 돌이키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똑같이 에돔처럼 심판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 (이사야 34:5-6)

여호와의 칼이라는 말씀이 5절과 6절에 거듭해서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에돔의 수도가 보스라입니다. 즉 보스라를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에돔 땅 전체를 하나님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의 두 가지 이유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왜 에돔은 이렇게 열방의 시범 케이스로 여호와의 칼에 심판당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첫째는 에돔은 끝까지 가버렸습니다. 끝까지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기회와 시간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닌데,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않고 계속해서 먼 길로 가버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제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에돔 족속의 조상이 에서입니다. 이삭의 큰아들 에서입니다. 에서와 야곱, 그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장자권을 상실한 에서가 집을 나갔습니다. 에서는 마음에 분노와 혈기 가득해서 집을 나갔지만, 사실 그 장자권을 잃어버린 데는 에서의 잘못이 99%입니다. 그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것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자리,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분을 가볍게 여기고 그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돌이키고 야곱의 장막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는데, 은혜의 장막을 박차고 나가서 세일산에 가서 아들딸 낳고 민족을 형성합니다. 그 후손이 에돔 족속입니다.

그들이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끝까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기회를 주셨건만 그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용서할 테니 돌아오기만 해라. 너희가 돌아오기만 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것 다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 지난날은 나는 기억조차 하지 않겠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오랜 기다림에 이들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결국 심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하나님이 또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그들이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기회를 주시고, 또 기다려주시고, 간절하게 애통해하시면서 하나님은 계속 시간을 주십니다. 그런데 에돔 족속은 그 기다림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끝간 데 없는 타락과 죄악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그 결과 그들은 여호와의 칼에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하루하루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시간을 연장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살게끔 하시는 것은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받은 기회를 선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 일치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고, 끝없이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서 주의 뜻을 발견하고 매 순간 매 순간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한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많이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올라가 보면 같은 동족입니다.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민수기 20장에 보면 에돔 사람들이 길을 내주지를 않습니다. 출애굽할 때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에돔 족속의 땅이 있었습니다. 그 땅을 통과해서 가겠다고 모세가 요청을 했는데 그들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른 척합니다. 그래서 길을 우회해야만 했습니다. 길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침입을 당할 때,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은 오히려 또 길을 열어주고 몰래 이방 민족들을 돕기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 그 형제를 도와주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외면하는 자들, 하나님은 그것도 심판의 이유로 삼으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와 돌이킴의 기회입니다. 죄악 가운데 있음에도 시간을 연장해주시는 것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의견 조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 생각이 다를 때,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끝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의 뜻을 발견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셋째,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맺힌 원수라 할지라도,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 혹은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을 향한 기도의 입이 열려야 합니다.

오늘 에돔의 심판을 보고 여호와의 칼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에돔처럼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실 때 돌이키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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