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5장

성경
이사야

광야에 피는 백합화

이사야 35장

무너지는 희망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우리 자신도 긴 인생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의 수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이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일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나름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것입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분이라도 사업이 순조롭다면 그것이 희망이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분이라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준다면 그것이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 - 사업의 성공, 자녀의 성장 - 은 근본적이고 영원한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도 변하고, 경제 상황도 요동치며,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붙들고 있던 희망마저 사라지면, 그때는 정말 숨 쉬기조차 힘들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기댈 수 있는 분이시며,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희망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전혀 기댈 곳 없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시며 구원이심을 선포합니다.

절망의 한복판, 유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의 유다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희망의 빛줄기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이미 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솔로몬 사후 남북으로 분열된 것입니다. 원래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동쪽 요단강에서 서쪽 지중해까지의 작은 영토였는데, 분열로 인해 국력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상숭배에 빠진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제 남유다는 북쪽에 강대국 앗시리아가, 남쪽에는 애굽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내부적으로 단결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국론은 사분오열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갈라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이사야 35:4)

34장에서 유다 백성들이 마침내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35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이 그들의 희망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의 약속

그런데 이 말씀은 단지 당시 유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로부터 700년 후에 오실 메시아가 궁극적으로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5-6)

맹인의 눈, 못 듣는 자의 귀, 저는 자의 다리 - 이것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문제들입니다. 어떻게 맹인이 볼 수 있으며,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이 모든 절망이 사라지고 희망으로 바뀔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이사야는 육체적 치유를 말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두 가지 절대적 문제를 가리킵니다. 바로 죄와 사망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된 죄의 문제,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 교만으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했던 그 죄가 결국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시켰고 죽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 스스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우리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궁극적 희망입니다.

사막에 피는 생명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사야 35:1-2)

광야, 메마른 땅, 사막 - 이 단어들만으로도 메마름과 절망이 느껴집니다. 풀 한 포기 없는 광야,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메마른 땅, 모든 것이 죽어있는 사막. 그런데 바로 그곳에 백합화가 핀다고 합니다. 황폐한 곳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단지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의 소망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사막에 백합화가 피듯, 광야가 노래하듯, 우리 인생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복음서가 이를 생생히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사랑에 굶주려 다섯 남편을 거쳤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던 여인, 여섯 번째 남자와 살면서도 그를 남편이라 부를 수 없었던 여인. 그녀의 삶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는 파탄났고, 경제적으로도 무너졌으며, 모든 것이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여인이 이제는 마을로 달려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황폐했던 인생에 꽃이 핀 것입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조차 끔찍했던 그녀의 삶이 주님을 만난 후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변화됩니다.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나면 천국의 보장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새로운 인생의 전기가 마련됩니다. 우리 주변의 황폐한 인생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경제적 문제나 관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들어가시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사야 35:10)

주님을 영접하면 속량함을 받고, 우리 안의 슬픔과 탄식이 사라집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사막 같던 인생에 꽃이 피니 더 이상 슬픔과 탄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진정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나 물질, 권력에서 희망을 찾지 말고, 죄와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은 황폐한 인생을 꽃피게 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메마른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계시면 사막에도 백합화가 필 것입니다.

셋째, 주님과 함께하면 슬픔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이 놀라운 변화를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은혜를 함께 누려야 합니다.

광야 같은 우리 인생에 주님으로 인해 꽃이 피고, 메마른 땅에 생명의 시냇물이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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