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6장

성경
이사야

히스기야 제 14년에

이사야 36장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비들

장구한 인생 여정에는 반드시 몇 차례의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건강상의 중대한 문제로 인한 고난이 있을 수 있고, 가정의 위기로 인생에 거대한 풍랑이 몰아칠 수도 있으며, 직장의 어려움으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련과 위기는 개인에게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공동체와 국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도 위기를 맞고 국가도 위기를 겪습니다. 외침의 위협이 있을 수 있고, 내부 분열로 인하여 극심한 곤경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관건은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다시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다시 일어서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한 번의 위기로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개인적으로 히스기야에게 중대한 위기가 닥쳤으며,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이었으므로 그 위기가 유다 전체를 휩쓴 사건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명확히 제시해 줍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혜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이사야 36:1)

마침내 앗시리아의 왕 산혜립이 유다를 정벌하러 북상하였습니다. 앗시리아는 당대의 패권국가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으며, 동방에서 서방으로 끊임없이 진군하여 그들의 최종 목표는 이집트였습니다. 이집트로 향하는 길목에 장애물이 되었던 북이스라엘을 기원전 721년에 멸망시켰습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정복지는 유다였습니다.

이집트로 향하는 통로에 유다가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유다에서 전력을 소모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유다의 항복을 받아내고 유다를 짓밟고 지나가며, 그 후 이집트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제 산혜립이 앗시리아의 제왕으로서 유다의 견고한 성들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자신의 군대장관 랍사게를 파견합니다.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니라" (이사야 36:2)

군대장관 랍사게가 대군을 거느리고 왔으나, 이 병력을 실제 전투에 투입할 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단 한 명의 병사라도 손실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복을 받아낸 후 이집트로 진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랍사게와 산혜립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유다 백성들을 모욕하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제국의 황제와 그 군대 장관이 이 나라를 능멸하는데 대항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오직 좌시하며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이들을 영접하기 위한 외교적 절차를 위하여 유다에서 사절단이 파견됩니다. 이들에게 랍사게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이사야 36:4-5)

이러한 언사의 배경은 히스기야 왕이 앗시리아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을 구실 삼아 이 나라를 침공한 것입니다. 이처럼 시비를 걸고 있었습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아서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사야 36:6)

과거 유다가 앗시리아의 대규모 팽창 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집트의 보호 아래 피한 바 있었습니다. 여러 동맹국들이 다양한 연합을 형성할 때 유다는 이집트와 동맹을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집트를 정벌하러 가는데 너희가 과거에 이집트와 손을 잡은 적이 있지 않느냐' 이러한 방식으로 모독하였습니다. 대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이처럼 능멸하는 상황에서, 이제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종말을 맞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내가 왕위에 오른 지 14년 만에 이제 이 나라는 끝장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 히스기야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무수히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생존해 온 세월이 몇 년인데', '우리가 현재 경영하고 있는 이 사업체가 몇 년인데', '내 나이 몇 세에 이제 내 인생이 종료되는구나', '내가 운영해온 이 사업이 이제 14년 만에 혹은 몇 년 만에 이렇게 종료되는구나'라고 절망하는 일이 우리 인생에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물질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이 겪고 있는 심정이 바로 그러한 심정입니다. 지금 앗시리아의 군대와 교전하여 승리할 힘이 있습니까? 누가 유다 백성들을 지원할 원군이 있습니까?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능력이 전무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여기 36장이 1절에 '히스기야 왕 제14년에'라고 시작하는데, 히스기야 왕 제14년은 이들에게 가장 참혹한 재앙이 닥친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어서 랍사게는 그 언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아람어로만 말하지 않고, 유다 백성들이 모두 청취하도록 유다어로 외쳤습니다. 영접 나갔던 사절단이 "제발 유다어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모두 듣고 있습니다"라고 간청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모두 들으라고, 백성들이 듣고 사기가 땅에 추락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문을 개방해 주기를 기대하며 그들은 유다 백성들의 언어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이사야 36:15-16)

히스기야 왕이 백성들에게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이 성을 수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호하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신뢰하지 말라, 따르지 말라, 너희는 항복하고 성문을 개방하라, 그러면 오늘 너희는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것이니 이제 너희는 항복하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이 말을 청취하고 있던 백성들의 마음이 동요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는 백성들의 심정이 땅으로 추락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종료되었구나, 교전해 봐야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백성들까지 이제는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이 나라는 폐국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히스기야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말라고 이미 그 사절단들에게 명령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 36:21)

협상을 위하여 파견된 사절단 아닙니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이 원하는 금과 은과 우리나라의 모든 보물들을 모두 드릴 테니 제발 우리와 교전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아니면 '우회하여 가십시오, 이집트로 향하는 통로를 개방해 드릴 테니 이제는 우리나라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협상을 위하여 파견되었다면 이 사절단들이 협상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어떠한 말도 대답하지 말라, 그저 청취만 하고 복귀하라고 이미 명령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지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이렇게 지시하는 이유는 '상대하지 마라,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말을 그저 흘려들어라'라고 명령해 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국가가 완전히 멸망하는 이 시기에 히스기야는 전화위복의 기회, 반전의 기회로 인간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대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지, 기도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펴보는 바와 같이, 37장 38장을 보면 이제 히스기야가 마침내 승리하지 않습니까?

히스기야의 승리가 아닙니다. 유다의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국가가 멸망할 뻔한 상황이 히스기야 왕 제14년은 오히려 승리의 기억이 되는 찬란한 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위대한 반전을 써내려가게 된 계기는 바로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 반전의 역사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도중에 금송아지를 제작하여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백성들을 모두 멸절시키고 너만 남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민족이 모두 멸망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제 이름을 당신의 생명 책에서 말소시켜 주십시오. 그 대신에 이 백성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민족이 멸망할 수 있는 위기에 모세가 배수의 진을 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의 생명을 담보로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지 않습니까?

출애굽기 32장은 민족이 멸망할 수 있는 날이었는데, 그런데 민족이 다시 소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위기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도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 그 위기가 오히려 승리의 기억이 되는 빛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만이 참된 해결의 열쇠입니다.

셋째, 무기력하지 말고 담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처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호소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절체절명의 어려운 순간과 위기가 찾아온다면,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놀라운 역전의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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