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해결하는 기도
이사야 37장
꼭 맞는 열쇠가 필요한 인생
현재는 자택 현관 열쇠를 휴대하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집에 출입합니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집 현관 열쇠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목걸이를 제작하여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집 현관 열쇠가 없으면 집에 출입할 수가 없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을 관리하는 이들은 열쇠 꾸러미를 휴대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꾸러미에서 열쇠마다 부착되어 있는 인식표가 탈락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매우 곤란한 일을 겪습니다. 도대체 이 열쇠가 어느 방 열쇠인지를 알 수 없어 모든 열쇠를 시도해봐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처럼 방마다 또 현관마다 정확히 부합하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개방하기 위해서는 그 열쇠를 삽입하여 회전시켜야 문이 열리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 견고하게 폐쇄되어 있는 문제도 이 문을 개방하려면 정확히 부합하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다른 열쇠를 가지고 삽입하고 회전시켜 봐도 그 문은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개방되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모두 개방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한 가지 열쇠, 기도뿐입니다. 그 기도라는 열쇠를 가지고 인생의 폐쇄된 문들을 개방해야 그래야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열립니다. 그런데 기도를 후순위로 두고 다른 것들을 가지고 아무리 개방하려고 노력해 봐도 힘만 소모될 뿐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선택한 기도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히스기야도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였고 또한 남유다 백성들도 국가의 존폐가 달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앗시리아가 마침내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남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집트였고 이미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그 군대를 출격시켜서 남유다를 위협하고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산혜립이 파견한 군대 장관 랍사게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합니다. 왕의 사절단 앞에서 그들은 유다어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욕되게 합니다. 백성들은 모두가 사기가 땅에 추락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그들과 일절 대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려고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갔고" (이사야 37:1)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굵은 베옷을 입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왜 굵은 베옷을 입었을까요? 굵은 베옷을 입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히스기야 왕이 잘못한 것을 찾아보면 없지 않겠으나, 그는 이전의 다른 왕들과 비교하여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 왕입니다. 선한 왕,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다의 왕이라는 이유로 지난날 모든 왕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고 유다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서 회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이전의 모든 왕들이, 이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행하지 못하여서, 다윗 이후에 어떤 왕들도 하나님 앞에 다윗처럼 바르게 살지 못하여서 이 나라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왕이 한가롭게 성전에 앉아서 엎드려 기도나 하고 있을 때냐고, 참모들을 소집하여 적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작전 회의를 하고 전쟁 준비를 하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그래서 하나로 결집해야 이 전쟁을 어떻게든 저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은 손가락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상황은 그런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다의 능력으로는, 남유다의 현재 군사력으로는 아무리 발악하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앗시리아의 군대를 저지할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능력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다가 홍해를 만납니다. 전방은 홍해 바다요, 후방은 이집트의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어 오늘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의 군대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막막한 상황이 아닙니까? 전방으로 뛰어들어서 바다에 수장되겠습니까? 아니면 후방으로 돌아서서 이집트 군대와 교전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뿐입니다.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셨습니다. 홍해를 분리하여 주셨습니다. 마른 땅이 되게 하셨고 이스라엘 군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오던 이집트 군대가 홍해에 수장됩니다.
홍해는 역설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녔습니다. 기도하는 백성들 앞에서 홍해는 구원의 길이 되었고, 기도하지 않는 자기 군사력을 신뢰하는 이집트 군대에게 홍해는 바로 그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백성들 앞에서 이 문제는 우리가 다시 생존할 길이 되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자들 앞에서 문제는 바로 그들이 그 자리에 매장되는 무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 문제 앞에서 히스기야처럼, 모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길을 하나님께서 개방하여 주시는, 우리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길을 하나님께서 개방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우선순위와 방법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옷을 입히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이사야 37:2)
왕이 신하들 중에 몇 명을 선별하여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파견하였습니다. 이사야에게 파견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이러하니 기도하여 주십시오. 지금 나라가 이런 지경에 있으니 중보기도를 하여 주십시오. 하고 상황을 알리는 것이겠습니다. 자신은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신하들은 선지자에게 파견하여 중보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이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위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어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중보기도는 열심히 부탁하고 자신은 분주히 다니며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히스기야가 선지자 이사야에게는 중보기도를 의뢰해 놓고 백성들에게는 기도하라고 해놓고, 자신은 이리저리 분주히 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였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결단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수많은 기도자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진정 기도해야 할 사람은, 내 문제는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단독으로 만나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롯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당사자인 롯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난 자였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결국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 가족이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까? 그들도 결국 멸망당하지 않습니까? 주변에 아무리 강력한 기도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기도한다 하더라도, 내가 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꾸어서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기도하는 자였고, 그 다음 중보기도를 부탁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기도
그가 성전에 올라가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펼쳐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이사야 37:14-15)
그가 적들에게 받은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저들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저 대충 기도하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지금 내 앞에 하나님께서 바로 서 계신 것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혜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이사야 37:17)
어떤 이들은 기도할 때 마지못해서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도해야 하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으니까 그저 시간을 채우고 공간을 채우며 앉아만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진실로 하나님께서 내 눈앞에 살아계신 것처럼, 마치 사람을 붙들고 엎드려 구하는 것처럼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 읽어보시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의 놀라운 결과
이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 왕 산혜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이사야 37:36-38)
이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의 군대가 나와서 앗시리아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쳤습니다. 이것은 유다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거느리고 다니시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나님의 사자들이 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앗시리아의 산혜립과 그의 군대 장관 랍사게가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십팔만 오천 명이 시체가 되어 있습니다. 전의를 상실합니다. 군인들이 교전할 수 있겠습니까? 힘이 나겠습니까? 이제 그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본국에 돌아간 이후에 여기서 힘을 잃은 산혜립은 아들들에게 암살당합니다. 결국 그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은 고통스러운 시작이었지만 영광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내 인생의 가장 큰 문제, 기도만이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견고하게 폐쇄된 문제들이 있지만, 오직 기도라는 열쇠만이 그 문들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도하되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내 문제는 내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기도하되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크고 위대하고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그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인생의 문을 활짝 개방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