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예물
이사야 39장
강함과 부드러움, 두 가지 침략 방식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략하고 압제하려 할 때, 약한 나라도 끝까지 저항합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습니다. 순순히 항복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도피하거나 결사항전하여, 마지막에 힘이 부족하여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끝까지 저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강한 상대도 피해를 입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강대국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원나라는 칭기즈칸의 후예들로, 그들이 얼마나 강력했습니까? 유럽을 제패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고려는 원나라에게 결사항전하였습니다. 피해 다니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견뎌냈습니다.
조선시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있었고, 정묘호란과 정축호란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진 세월을 겪었고, 그런 대단한 나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이 이 작고 연약한 나라를 침략해 올 때마다 끝까지 견디고 또 이겨내면서 이 나라 강토를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강한 상대는 강한 힘만을 가지고 약한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달콤하게 강한 상대는 회유하고 달래면서 침략해 오기도 합니다. 강한 상대가 힘을 가지고 달려올 때는 어떻게든 항전하고 버텨보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유혹을 가지고 침략해 올 때는 국론이 분열되고 나뉘어집니다. 괜찮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교회의 세속화가 이런 방식으로 가속화되어 왔습니다. 교회가 순수성을 유지했을 때는 로마의 악제 치하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초대교회가 공인되지 못하고 짓밟히고 끌려가고 사자굴에 들어가고 콜로세움에 세워졌을 때, 그때 교회는 순수하였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그때 더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부흥하였습니다.
그런데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받은 이후에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하고 세속화됩니다. 그것은 세계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난했을 때, 힘겨웠을 때,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해주었을 때는 교회가 온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부강해지자 교회 세속화의 물결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친서와 예물이 얼마나 사람을 무섭게 하는지, 또 얼마나 이 세속화를 급속도로 조장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두 번의 기적을 경험한 히스기야
유다 왕 히스기야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두 번이나 특별한 경험을 한 왕이었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앗시리아 침입 때였습니다. 앗시리아의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집트였고, 그들은 유다에게 항복을 받아내려 하였습니다. 위협을 가했습니다. 앗시리아의 왕 산혜립이 직접 왔고, 그의 군대 장관 랍사게가 들어왔습니다.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을 모독하였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뛰어갔습니다. 성전에 엎드려서 '하나님 보시옵소서, 저들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우리나라를 이런 식으로 짓밟으려고 합니다. 하나님 일어나서 해결해 달라'고 울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군대,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앗시리아의 군대가 하룻밤에 십팔만 오천 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산혜립과 랍사게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본국으로 돌아갔고, 왕은 암살당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앗시리아는 급격하게 국력이 쇠퇴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를 건진 기도였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히스기야 개인의 위기였습니다. 이제 좀 안정을 찾을 만하다 싶었는데, 히스기야에게 죽을 병이 찾아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왕은 이제 백성들에게, 당신의 집안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십시오. 이제 하나님 앞에 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다시 또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성전에 가서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이 나라와 백성들을 이끌고 한번 잘해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또 있겠습니까? 상황은 달랐지만 문제의 내용은 달랐지만, 해결하는 방식은 똑같았습니다. 그는 기도로 해결하였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인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엎드렸고, 그 기도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앗시리아는 강한 상대였습니다.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죽음도 강한 상대였고, 앗시리아의 군대도 강한 상대였습니다. 이렇게 강한 상대가 밀려올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로 이겨내고 승리하였습니다.
바벨론의 교묘한 접근
그런데 이제 그 다음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내니라" (이사야 39:1)
이제 글과 예물을 보낸 사절단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벨론의 왕이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글은 히스기야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고 안부를 묻는 친서였고, 예물은 히스기야의 환심을 사로잡을 만한 귀중한 선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어디서 나타난 나라입니까? 앗시리아의 산혜립 왕이 암살당하면서 앗시리아는 급격히 국력이 쇠퇴하였습니다. 세계사가 늘 그랬듯이 강한 나라가 멸망하면 또 다른 나라가 일어나게 됩니다. 앗시리아가 이렇게 되자 언제나 자웅을 겨루던 나라들 중에 바벨론이라는 신흥강자가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앗시리아는 무력으로 유다를 짓밟고 이집트로 가는 교두보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앗시리아가 항상 모욕만 가하고 위협만 가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친서와 예물 공세로 유다왕 히스기야를 무력화하려 한 것입니다. 앗시리아가 유다를 무리하게 삼키려다 실패한 것을 보고 교훈을 얻은 바벨론은 더욱 교묘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제 사절단을 유다에 보냈습니다. 친근한 안부 인사와 함께 히스기야의 마음을 끌 만한 예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절단을 맞이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이사야 39:2)
히스기야의 기뻐하는 모습, 히스기야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히스기야는 왜 이렇게 흥분했을까요?
분별력을 잃은 히스기야의 교만
지금까지 히스기야는 왕으로 지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강한 나라 앗시리아가 항상 모욕만 가했습니다. 언제 그들이 유다를 삼킬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국가로서,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존귀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까운 나라는 이집트라는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항상 이집트의 눈치만 보고 살았습니다. 앗시리아에 대응하기 위해서 각 나라가 동맹을 맺자고 제안하는 골치 아픈 외교정세 가운데, 복잡한 국제정세 가운데 그는 왕으로서 자존감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무너진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제 신흥강국 바벨론이 나를 왕으로 대접해 줍니다. 이 나라 유다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해 줍니다. 내가 아팠다가 나았다는 것을 듣고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친서와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직접 사절단을 보내 나를 알현합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절단을 데리고 자기 궁전에 있는 모든 창고들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다 순회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외교관계에서 목적이 없는 선물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유다를 찾아온 것입니까?
이제 앗시리아는 지는 해가 되었고, 바벨론은 떠오르는 해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목적지도 역시 이집트였습니다. 바벨론이 앗시리아가 가졌던 영토 대부분을 다 차지한다고 가정할 때, 그들이 그 영토에 만족하겠습니까?
앗시리아가 다스리고 있었던 영토, 바벨론이 지금 차지할 영토에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두 강들은 유속이 굉장히 빨라서 자주 범람하였습니다. 이들은 항상 이집트가 부러웠습니다. 나일강의 비옥한 그 땅이 부러웠습니다. 역시 이들도 마찬가지로 이집트가 목적지였습니다.
그러면 바벨론도 이집트를 차지하려면 유다는 제거 대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은 방법을 달리하였습니다. 앗시리아가 유다를 무리하게 삼키려 하다가 저렇게 된 것을 보고 교훈을 얻은 나라였습니다. 바벨론의 진정한 의도는 유다와 동맹을 맺어 이집트 정벌 시 유다를 전진기지로 활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때 유다를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을 히스기야가 분별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의 치명적인 실수를 봅니다. 적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밀고 들어올 때, 적들이 강한 권세를 가지고 무기를 앞세워서 군대를 앞세워서 쳐들어올 때는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기에 달려 있을 때는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친서와 예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이 나라에는 그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존감을 앞세우고 이제 왕으로서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들에게 온 나라를 다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사실 히스기야가 보여주려고 했다면, 성전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내가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 자리를 보여주는 것이 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군대를 이렇게 물리치셨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만약 당신들도 똑같이 우리나라를 위협한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당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옳지 않았겠습니까?
나를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지키신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간증하고 보여주어야 하는데, 온갖 창고를 다 보여주고 자기 나라의 부강함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작은 나라 아닙니까? 그 나라가 은금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무기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랑하고, 진실로 자랑하고 간증해야 할 것은 자랑하지 않았던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
이사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사야 39:5-7)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절단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이 결국 바벨론으로 옮겨갈 것이며, 그의 후손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심판이 선포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친서와 예물에 현혹되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교만해진 히스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노하심을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선포한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친서와 예물 공세가 강한 위기보다 더 위험합니다. 우리 인생에 위기가 닥쳐올 때, 적들이 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올 때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기도하지만, 친근한 접근과 선물 공세가 따라올 때, 달콤한 제안이 들어올 때 그때 우리는 오히려 분별력이 흐려지고 교만해집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강한 적이 침입할 때만이 아니라 달콤한 유혹과 친근한 접근이 다가올 때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말고, 나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남아서 기도하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진실로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지혜롭게 구하고 깨닫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