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장

성경
이사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장

인간적 위로의 한계

자녀가 취업을 위해 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떨어졌다면, 그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곁에 조용히 있어 주든지 몇 마디 말이라도 건네든지 기다려주든지, 그가 슬픔을 해결하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곁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위로라고 말하며, 부모된 자로서 마땅히 해주어야 할 도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실패와 착오,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으나,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친구, 몸이 아파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만나면 이러한 위로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크고 작은 위기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는 위로는 극히 제한적이며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곁에서 위로한다고 해서 몇 마디 말을 건넨다고 해서 시험에 떨어진 아이를 합격시켜 주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사업에 실패한 친구에게 다시 그 사업을 일으켜 주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인간관계에 실패한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적 위로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고 무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필요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너의 곁에 있어 줄 테니 너 힘내고 한번 다시 도전해 보라"고 말을 건네주는 것이 매우 큰 힘이 됩니다. 위로를 받는 사람은 그 순간 이것이 진정한 도움이 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간 후에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줘서 힘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위로

인간의 위로가 덧없지만 이렇게 힘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로는 인간의 위로와 본질이 다릅니다. 인간적 위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시고 우리 눈에 흐르는 눈물을 완벽하게 닦아주시기 때문에 진정한 위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낙심한 유다백성들, 이제는 더 이상 기댈 데가 없다고 여기는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서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히스기야는 어떤 존재였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당시 유다백성으로 살았다면 왕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 왕이 얼마나 믿을만하지 않았겠습니까?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악한 왕 중에도 거의 최악으로, 유다 백성들을 타락으로 이끌어갔던 극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떻게 히스기야 같은 위대한 왕이 태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히스기야는 특별했습니다. 그가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나라는 엉망이었습니다. 앗시리아 때문에 또 내부적으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가고 해결해 나갔습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엎드렸으며,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그 나라를 안전하고 든든하게 세워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른 나라와 동맹도 맺지 않았더니, 결국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서 앗시리아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가진 마음의 희열, 그 충만함이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지금 이런 시절에도 우리 왕이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결국 우리가 승리했구나." 이것을 전적으로 이끌어갔던 히스기야는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병도 고쳤습니다. 죽을병이라 하여 백성들이 나라를 잃은 것처럼 탄식했는데, 그것 또한 성전에 나가서 기도하고 15년을 더 연장받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히스기야의 입지가 탄탄해졌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보다 더 좋은 왕을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이 시대에 우리가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요, 영광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히스기야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이렇게 새롭게 세워간다는 것에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 백성들에게 심각한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들에게 자기 나라 곳간을 다 보여준 것입니다. 강력한 외적의 침입에는 기도로 이겨냈는데 은밀한 패물의 예물에는 약해져서 분별력을 잃어버린 왕이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의 기대감에 비례해서 좌절감도 더 커졌을 것입니다. 진실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에게 히스기야는 희망이었는데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뀝니다. "도대체 우리 왕이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을 의지하며 분별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을까?"

그들에게 지금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

이 짧은 "위로하라 위로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낙심천만한 백성들, 기댈만 했고 의지할 만했던 왕을 이제 더 이상 실망으로 바라보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너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위로의 메시지가 선지자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흘러갑니다.

사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합니다. 내 가족과 자녀, 눈에 보이는 믿을 만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한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믿을만하다고 여겼을 때 그 사람에게서 좌절감을 또 발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사람은 진실로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실망감만 줄 뿐입니다. 히스기야에게 큰 좌절을 느낀 유다 백성들처럼,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위로를 받아야 되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진실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0:4-5)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근본 중심의 뜻이 무엇입니까? 역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골짜기처럼 험준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그 역사를 다시 평지가 되게 할 것이고, 너희가 높고 높은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힘겹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그 언덕을 평탄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역사의 길고 긴 흐름을 통해서 너희에게 일하고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너희의 희망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너희 인생의 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백성들의 상황을 살펴보십시오. 아하스 시절에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런데 히스기야 시절에 그들은 기뻤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나세는 또 다른 최악의 왕이었습니다. 아하스, 히스기야, 므나세가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역사가 반복된다 할지라도 그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서도 사람이 우리를 좌절시키고 환경을 의지할 바가 못 되지만, 내 인생을 이끌고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우리는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고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주변에 의지할 만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만이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이사야 40:8-9)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말씀하지 않습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데, 백성들은 이때까지 풀과 같은 히스기야를 보았습니다. 한 송이 아름답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말라 쓰러져 가는 한 송이꽃과 같은 히스기야가 자기들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느꼈지만, 그것은 기댈 바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영원히 서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결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을만하고 의지할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풀과 같고 꽃과 같아서 시들고 마르게 됩니다. 히스기야처럼 탁월한 왕이라 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을 의지할 때 우리는 지속적인 실망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우리의 완전한 위로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인간의 위로와 본질이 다릅니다. 인간적 위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시고 우리 눈물을 완벽하게 닦아주시는 진정한 위로입니다.

셋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희망입니다.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 희망이 되십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진실로 기댈 데가 없는 현실에서도, 사람이나 물질이나 환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위로받는 주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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