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2장

성경
이사야

희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사야 42장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를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그 실패가 쌓이고 쌓여서 우리 속에 절망이 됩니다. 이 절망의 시간이 지속되고 오래되다 보면 자기 인생을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인생 자체를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분들이 처음부터 노숙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크고 작은 실패를 가정에서 일터에서 경험하다가 그 실패가 쌓이고 쌓여서 절망이 되고, 절망의 시간이 지속되다가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자기 인생을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과정을 거쳐 거기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안타까운 것은 그 상황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붙들 수 있는 작은 희망의 한 조각이라도 있었다면 그 희망을 붙잡고 절망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거나 버티거나 이겨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희망조차 찾아내고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인생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 가진 희망이라는 것이 절대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희망은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인간의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인 희망이라면 그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가장 깊고 깊은 수렁 속에, 가장 큰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붙잡으라고 주시는 큰 희망,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소망을 우리에게 또 그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언의 희망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사야 선지자가 살았던 그 현 세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현 세대 사람들,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앗시리아였습니다. 큰 나라가 침략을 해 들어오고 주변에 여러 열강들이 동맹을 맺자고 손을 뻗어오는 그 지점에서 "너희들은 하나님만 붙잡고 살아가라. 그러면 견뎌낼 것이고 결국은 승리하리라"하는 메시지였습니다.

40장부터 66장까지의 말씀은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을 붙잡고 살지 않으면 결국은 앗시리아 뒤에 일어날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망할 수밖에 없고 포로로 잡혀갈 텐데, 포로로 잡혀간 그 자리에서도 나라는 망했지만 너희는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라. 그러면 거기에서도 결국은 승리할 수 있다"하는 전체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먼 미래에 주시는 말씀인 동시에 또 메시아 예언에 대한 예고이기도 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가 기뻐하는 자", 그분은 곧 이사야 선지자 이후에 700여 년이 지나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살아가는 유다백성들, 이사야 선지자보다 먼 미래에 결국은 하나님 말씀을 붙들지 않아서 나라는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살아야 하는 자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그분을 붙들고 살아가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소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정의는 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정의라는 개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 절대적이고 강권적인 말씀으로 이 땅에 주어지는 것을 미쉬파트, 정의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된 것,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라지고 북이스라엘도 멸망당하고 남유다도 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종교 지도자, 제사장, 율법학자들, 서기관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정의를 구현하지 않았고, 정치 지도자들, 왕을 비롯한 왕궁에 사는 자들도 그들도 정의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인간의 정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정해진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희망을 두지 말라. 이제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이방에 정의를 행할 것이니 그분에게 소망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에게 우리가 희망을 둘 때가 있습니까? 오늘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자들, 우리 눈에 보이는 지도자라고 하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소망을 둘 수 있겠습니까? 소망을 두고 희망을 걸고 그분들을 인격적으로 좋아하고 따르다가 실망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분이 어떤 분이시건 간에 결국은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방에 정의를 행할 것이고, 그것은 이전이나 현재나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그리스도

이제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2-3)

우리가 복음서에서 자주 읽어봤던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오시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진실로 정의를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때까지 인간 지도자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진실로 정의로, 미쉬파트로 삼아서 행한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사랑하던 다윗조차도 완벽한 정의를 행한 사람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는 말년에 결국 밧세바 사건을 저질렀고 그 이후에 수많은 일들로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하고 하나님께 벌을 받은 자였습니다.

결국 인간 왕에게, 인간 지도자들에게 진실로 정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라는 사실을 유다 백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는 정의를 행할 자가 없으나 그들에게는 기댈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희망을 가질 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고 그분이 보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그러면 그분을 통해서 너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사람을 보지 말고 이 세상을 운행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보고 절대적인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8)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러며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내 영광을 우상에게 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먼 미래에 이사야 선지자보다 미래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들, 그들은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잡혀간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태어난 유대인들 2세들이 있습니다. 3세도 태어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나보니 우상숭배의 나라 바벨론입니다. 끌려갔더니 거기는 우상숭배를 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 나는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이사야 42:17)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상황을 핑계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크게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들은 어떤 상황도 핑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이사야 선지자가 주신 말씀대로 살아간 자들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단하고 그들은 채소만 먹겠다고 결심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 그들은 금신상에게, 부어 만든 신상에게 절하지 않아서 감옥에도 들어가고 풀무불에도 들어가고 사자굴에도 던져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켜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높이 들어서 존귀하게 해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희망으로 붙잡고 하나님께만 무릎 꿇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고 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악한 바벨론 같은 세상입니다. 상황이 자꾸만 우리 눈앞에 크게 보입니다. 상황이 자꾸 우리를 핑계하게끔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신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고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서 수치당하지 않기를, 오히려 더 나아가서 더 크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절대적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희망은 절대적일 수 없으며, 사람에게 소망을 두면 반복적으로 실망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인 희망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이 희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둘째,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돌보십니다. 인간 지도자들은 모두 불완전하여 진실한 정의를 행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진실로 정의를 시행하십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도 그분 안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셋째, 어떤 상황도 우상숭배의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와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섬기며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한 조각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을 사람이나 상황에서 찾지 말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icon
핵심 주제
icon
제목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