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6장

성경
이사야

벨과 느보

이사야 46장

책임감의 발달과 성숙의 여정

책임감이란 인간이 지닌 의무감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도덕적 감정에 속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약했던 이 감정이 성장 과정에서 점차 발달하여,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으로 시작됩니다. '내 인생을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싹트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입니다.

이어서 결혼과 가족을 통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더 나아가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의 여정입니다.

그런데 몸은 다 자랐으나 자신과 가족, 이웃과 공동체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어른답지 않은 자들로서 상대하기 매우 어렵고 버거운 존재들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실까요?

우상의 허망함과 하나님의 신실함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우리 각자에 대해 매우 강하고 능력 있는 책임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에게는 책임감이 때로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하나님의 책임감은 실제로 책임지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철저한 책임감과 우리를 향한 신실한 마음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으니 그들의 우상들이 들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매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이사야 46:1)

벨과 느보는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으로, 이들이 엎드러지고 구부러졌다는 것은 완전히 깨어지고 박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의 멸망을 뜻하며, 고대 전쟁이 신들의 대리전으로 여겨졌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줍니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왕의 강력한 권세와 군사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강대국이었습니다. 남유다도 기원전 586년 이 나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영화는 길지 못하여, 남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섬겼던 벨과 느보는 이제 짐승들에게 짐으로 실려 멀리 떠나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포로살이 중이던 유다 백성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며 느꼈을 충격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신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나라가 무너지고,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며 제물을 바쳤던 우상들이 산산조각 나서 짐승들에게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며 우상 숭배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금이나 은, 견고한 쇠덩어리로 만들었다 해도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든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의 허망함을 직접 보여주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돌보심

이러한 우상의 허망함과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본질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이사야 46: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안으시고 업고 다니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지금까지 이끌어가시며 책임지신 분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모태에 지어지기 전부터, 만세 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신 창조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원하리라" (이사야 46:4)

'내가 지었은즉'이라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되기까지,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업고 책임지고 돌보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백발의 노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생산성이 없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최소 20년 이상 무한정 돌봐줘야 하고, 70대를 넘어 백발이 된 노인 역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생산성 없는 우리를 어린아이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업고 책임지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창조주로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예물보다 귀한 상한 마음

실제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상황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있던 때였습니다. 성전이 없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돌보고 계셨습니다. 70년 포로기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물을 드리는 생산성 있는 자만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히려 성전이 있던 시절을 돌아보면, 유다 백성들이 많은 재물과 예물을 가져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당신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지속적으로 책망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 시대에 무역이 번성하고 영토가 확장되어 가장 강력했던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땅을 많이 가지고 물질의 부자가 되었으나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 있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책망하셨습니다.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모두 사기꾼들로서 사람들을 억압하며 끊임없이 은금과 재물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상들이 벨과 느보처럼 엎드러져 짐승들에게 떠밀려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와도 됩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와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책임져 달라"고 부르짖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공생애 3년을 보내시며 아무것도 없는 자들,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들을 찾아다니시며 돌보시고 위로해주시고 책임져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마음으로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야말로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6:9)

정말 하나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옛적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우리가 아무것도 없고 연약하고 부족할 때도 상한 심령만 가지고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이후 영원히 책임지시는 신실한 창조주이십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 시절부터 백발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우리를 끝까지 품으시고 업으시며 돌보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둘째, 우리는 빈손으로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적 헌신이나 생산성보다 상한 마음과 진실한 영혼을 더욱 귀하게 여기시며, 아무것도 가져올 것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주십니다.

셋째,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의지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과 권세는 시간이 지나면 벨과 느보처럼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돌보십니다.

옛적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며, 오늘도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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