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8장

성경
이사야

고난의 풀무에서

이사야 48장

자기주도성의 부재와 하나님의 인내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자기주도학습을 권장합니다. 아무런 가이드 없이 무작정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명확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구체적인 방향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며, 잘 모르는 것은 질문하고 토론합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체화된 학생들은 별다른 관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공부하고 질문하면 토론하며 대화하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이 되지 않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학습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 전반이 미숙한 학생들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다루고 세밀하게 관리하다 보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이 많이 가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고 불편한 일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자기주도성이 전혀 없는 완전히 결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통해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라"고 분명히 지시하셨으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면 오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가 분명한데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에게 많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책망으로, 때로는 그들을 물리적으로 다루기도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겨나고 하나님을 오해할 때도 많았습니다.

말과 행실이 다른 백성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유다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함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 (이사야 48:1)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실함이 없고 공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즉 이 말은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판단하실 때 "너희들은 입으로는 그럴듯한 말을 하는데 행동은 하나도 따라와 주지 않는구나"라고 탄식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성전에 가서는 하나님 앞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도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은금과 제물을 가져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성전 밖을 나와서 하는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의 행동과 그 밖에서의 행동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말과 행실이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책망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 하나" (이사야 48:2)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예루살렘 성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릅니까? 그곳에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향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라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지만 삶이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라는 뜻인데,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삶이 똑같았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이 없었습니다.

완고함과 교만의 문제

이런 악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이사야 48:4)

그들은 완고했습니다. 목이 쇠의 힘줄이라고 하였고, 이마가 놋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목이 뻣뻣하고 곧아서 숙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완고해서 목을 숙일 수 없는 백성들, 이마가 놋처럼 굳어서 하나님 앞에 한 번도 엎드리지 않는 백성들을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거룩한 성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나 거룩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형식적으로는 와서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처럼 살지만 그러나 삶의 예배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말과 행실이 다르고,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자부심은 가지고 있으나 전혀 거룩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교만한 목을 가지고 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루십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인내와 사랑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8:9)

의외로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참으시며 멸절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사야서 40장부터 66장까지는 바벨론 포로기를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이미 멸망해버렸습니다. 북이스라엘도 망했고 남유다도 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너를 멸절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라가 망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멸절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고난의 풀무 불에서 너를 택하였노라" (이사야 48:10)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70년 포로기를 "고난의 풀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내가 너를 사랑하고 연단하고 있는데, 내가 이 고난의 풀무 70년을 통해서 너를 고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마 유다 백성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했으니 우리도 끝났구나. 우리가 바벨론 포로로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끌려왔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셨구나. 이제 하나님도 우리를 손 놓으셨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백성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주도성이 없는 자들, 영적으로 전혀 응용 능력이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제 고난의 풀무에서 훈련시키십니다. 말과 행실이 다른 자들, 전혀 거룩하지 않은 자들, 목이 뻣뻣하고 곧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는 드리되 진정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고난의 풀무에서 70년간 연단하시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들이 70년 포로기를 겪으면서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70년 포로기를 통해서 많이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지난 날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던 그 날들을 그리워하고 소망하며,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고난의 풀무가 이들에게 얼마나 유익했는지 모릅니다.

고난의 의미와 하나님의 아쉬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과 힘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풀무에서 다루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셨다면 우리 인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자가 죄를 짓는데도 더 잘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 고난의 풀무처럼 뜨겁게 우리를 연단하는 문제들이 있다면 돌이켜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루시고 불순물을 빼내게 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고난의 풀무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48:18-19)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이라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진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준 말씀을 따라서 그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가이드를 따라 영적인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말씀대로 엎드리고 겸손하게 살았더라면, 말과 행실이 일치되었더라면, 너희가 정말 거룩한 자로 행실이 바르게 살았더라면, 너희 목이 곧은 백성이 아니라 겸손하게 나에게 와서 엎드렸다면, 너희에게 평안이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아쉬움을 표현하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영적인 자기주도성을 갖춘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말씀을 통해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주셨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아 고난의 풀무를 겪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전에서만 거룩한 척하고 성전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사는 이중적인 삶이 아니라,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실함과 공의가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해야 합니다.

셋째,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어려움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신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시는 고난의 풀무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풀무로 연단하는 일이 아예 처음부터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가야 할 길일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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