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혀, 열린 귀
이사야 50장
성경이 증언하는 메시아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흘러갑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신약성경 가운데 복음서는 이미 이 땅에 오신 메시아께서 행하신 사역과 이루신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의 삶과 신앙을 증언합니다. 실로 성경 전체는 메시아를 향해 수렴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서와 신약성경 전체는 메시아를 증언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연 구약성경이 메시아를 다루고 있는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어디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이사야서를 권해드립니다.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을 얼마나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실 메시아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예언하고 계신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시대와 사명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 사역을 펼쳤을 당시 남유다는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인해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하실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놀라운 예언의 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이사야 이후 100년 뒤에 일어날 남유다의 멸망을 미리 내다보시며 "너희들이 이렇게 살면 이 나라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실제로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고,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까지도 이사야의 입을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사야 이후 700년이 지나서 일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까지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50장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펼치실 사역을 이사야의 입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의 근저에 자리한 그 근본적 원동력이 무엇인지까지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학자의 혀와 깨우침 받는 귀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4)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펼치신 사역 가운데 상당 부분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표현에서 "나"는 바로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학자들의 혀처럼 예리하고 정확하셨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악한 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위선적인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가감 없이 날카로운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과 곤고한 자들, 병든 자들과 위로가 필요한 모든 영혼들에게는 더없이 따뜻하고 자비로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품게 하시고, 현재의 고난을 견디며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한없이 친절하셨습니다. 비유를 통해 깊은 진리를 쉽고 이해하기 쉽게 전해주셨습니다. 직설적인 교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가셔서 심오한 하늘의 진리를 평이하고 따뜻한 언어로 들려주셨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수많은 무리가 몰려들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벳세다 들녘에서의 말씀 사역을 보십시오. 남자만 5천 명이 모일 정도로 무수한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산상수훈을 선포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에 오르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운집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하늘의 권능이 임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권능의 근원, 새벽 기도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이 학자들의 혀와 같은 권능을 지녔던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처럼 알아듣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하나님과 깊고도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들—말씀 사역, 치유 사역, 기적 사역—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열매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본 뿌리는 주님께서 날마다 그 귀를 깨우쳐 달라고 간구하신 기도 사역에 있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기도하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얼마나 간절하고 열정적이며 뜨거운 기도셨습니까? 주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으려 하셨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품고 계신 마음을 알아내려고 기도 중에 분투하듯 간절히 간구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굳이 기도하지 않으셔도 모든 것을 아실 텐데, 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셨을까요? 물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하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시면 제자들이 따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늘 곁에 두고 다니시며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나가시면, 제자들도 졸음을 무릅쓰고라도 스승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너희도 귀를 깨우시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기도의 본질은 듣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예수님께, 하나님께 던져버린 후 귀와 마음을 닫고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노력이어야 합니다.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처럼 알아듣게 해 달라"는 이 간구가 우리 기도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가 우리 삶의 뿌리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학자들의 혀와 같이 상황에 적합한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강팍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마음을 찔러 깨뜨리는 능력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며, 고통당하는 자를 만나면 참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우리도 우리 예수님처럼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처럼 알아듣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며 뒤로 물러가지 않는 삶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이사야 50:5)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귀를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은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라는 극한의 고난을 앞두고도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시고 두려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망설입니까? 우리는 어찌하여 세상과의 갈등과 대립에서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 길을 걸어도 되는지, 내가 지금 이 선택을 해도 되는지, 내가 지금 이 사람과 함께 교제하며 미래를 계획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다는 것은 귀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귀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진실한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뒤로 물러서지 않으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한 걸음씩 전진하시며 십자가마저도 온전히 받아들이실 수 있었던 까닭은 기도를 통해 귀가 활짝 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디에서 망설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지,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며 이 상황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가 열리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만류해도, 우리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깨달았다면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 귀가 열려서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멈춰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 주님께서 그 길을 걸어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망설임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욕과 수치를 이기는 기도의 능력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이사야 50:6-7)
우리 예수님께서는 귀가 활짝 열린 이후로 부끄러움과 침 뱉음, 모욕과 수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십자가 그림을 볼 때는 예수님께 최소한의 천을 둘러드린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들은 완전히 벌거벗김을 당했습니다. 모든 옷을 벗기워 극도의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하는 것이 십자가형의 특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받으신 채찍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채찍에는 짐승의 뼛조각들이 박혀 있어서, 채찍이 몸에 닿는 순간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이 모든 모욕과 침 뱉음, 매질을 수치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응당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여기셨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기도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소유한 자는 세상의 어떤 모욕과 수치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연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작은 일에도 쉽게 힘들어하고 넘어지며 쓰러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분노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진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진중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치와 작은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믿음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우리 모든 사역과 삶의 근본적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놀라운 사역의 그 깊은 근원에는 "학자의 귀처럼 귀를 깨우치사"라고 간구하신 기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귀를 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 열린 귀는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은 자는 세상이 반대해도 용기를 내어 전진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따르는 길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금하시면 기꺼이 멈춰 설 수 있습니다.
셋째, 기도의 능력으로 우리는 어떤 수치와 모욕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은 자는 진중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모든 깊고 심오한 사역의 그 뿌리에 "학자의 귀처럼 귀를 깨우치사"라고 간구하신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기도로 시작하는 이 하루가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