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이사야 54장
터닝포인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거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말은 우리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기분 좋은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다른 나라 팀과의 경기에서 계속 끌려다니다가 감독의 선수 교체 이후 경기 양상이 완전히 달라져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면, 그 선수 교체 시점이 바로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낙심을 거듭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가다가 어떤 결정적 사건을 마주한 이후 삶의 궤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면, 그 사건이 바로 우리 인생의 반전 계기,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터닝포인트를 꿈꾸고 기대하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개인적인 터닝포인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온 민족의 역사를 바꾸고 온 세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는 반전의 계기를 제시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남유다에서 예언 사역을 감당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100년 후 남유다의 바벨론 멸망과 70년 포로기, 그리고 700년 후 메시아의 강림까지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역설적 약속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
이 말씀은 일견 논리적 모순처럼 보입니다.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의 경험이 없는 여인, 산고의 아픔을 겪지 못한 여인이 어떻게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기쁨의 근거가 없는데 어떻게 환호하며 외쳐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홀로 된 여인의 자녀들이 남편이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많을 것이라는 선언도 역설적입니다. 홀로 된 여인은 남편이 없어 자녀를 낳을 가능성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인데, 어떻게 그 후손들이 더 번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역설적 표현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홀로 된 여인은 유다를 가리키고, 남편이 있는 여인은 앗시리아, 바벨론, 이집트 같은 거대 제국들을 상징합니다. 앗시리아나 바벨론이나 이집트에는 경제력도 군사력도 인구도 영토도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남편이 있는 여인처럼 든든한 배경과 모든 것을 구비한 자들입니다.
반면 홀로 된 여인 유다는 가진 것이 전무합니다. 제공하고 싶어도 줄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동맹을 금하셨기에 의지할 나라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켜보라. 너희가 저 앗시리아나 바벨론보다, 이집트보다 훨씬 더 강성한 나라가 될 것이고, 너희 민족이 훨씬 더 번성할 것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네 줄을 길게 하며 네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사야 54:2)
하나님께서는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니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장막터를 확장하고 거처를 넓게 조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유다 백성들은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현재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보전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위협이 임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장막터를 확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이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이사야 54:3)
하나님께서는 좌우로 확장되고 열방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이 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런 일이 성취되며, 이 역전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일까요?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7-8)
긍휼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그들을 품어 안으시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과 시련이 전환되어 열방을 소유하고 장막터를 확장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긍휼을 얻는 길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자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질이나 시간의 헌신 이전에 훨씬 더 핵심적인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교만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권력이면, 힘이면, 제가 가진 능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오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왜 분열되었습니까? 솔로몬의 교만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왕들을 의존했습니다. 여러 나라와 정략결혼을 맺으면 나라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 교만이 결국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북이스라엘도 여로보암의 교만으로 인해 멸망했고, 남유다도 결국 교만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얻으려면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능력도 없고 무익한 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그 순간부터 놀라운 반전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된 자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시고, 장막터도 확장하게 하시고, 거처도 넓게 하시고, 열방을 소유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역동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위치를 주목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현실을 들으면 한숨밖에 지을 수 없는 그런 절망적 상황 가운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가 우리의 진정한 위치입니다.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덮을 것이고, 그 보혈 아래에서 우리는 긍휼함을 입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교만을 회개하고 자만을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거하지 않았던 과거를 완전히 청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역전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나의 위치를, 내 좌표를 다시 한번 면밀히 살피고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 터닝포인트를 마련하며 반전의 계기를 붙잡고 다시 한 번 일어서서 이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