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악인, 선택의 갈림길
이사야 57장
양자택일의 진리
사람들은 대체로 이분법적 선택을 꺼립니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면 부담을 느끼며, 제3의 대안이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 합니다. 일상적인 선택에서 이러한 태도는 지혜롭고 실용적입니다. 가령 점심 메뉴를 정할 때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만 고민하기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나 선과 악, 삶과 죽음,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이것은 생사가 결정되는 문제이기에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든지, 아니면 사탄의 편에 서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제3의 길을 찾아 어중간한 자리에 머문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비겁함이라 부르십니다. 우리가 회색지대라 일컫는 그곳에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의인과 악인만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를 의인이라 부르시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을 악인이라 칭하십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은 의인과 악인의 명확한 구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인지 악인인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아니면 애매모호한 악인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합니다.
상황을 초월하는 의인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 가도다" (이사야 57:1)
하나님께서는 먼저 의인에 대해, 그리고 의인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남유다 말기는 극도로 혼탁한 시대였습니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의인을 발견할 수 없는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 순전한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의인들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기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강요받을 때 죽음까지도 불사했습니다.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암울했던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 시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수많은 선지자들이 지하로 숨어들고 변절자가 속출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홀로 남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엘리야가 홀로 남았다고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그루터기가 이 땅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부패한 세상이라도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단순히 행위의 의로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처해진 환경을 따라간다면 결코 의인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상황이 두려울 때 어떻게 말씀을 붙잡고 살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의인은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절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상황만을 고려했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기로 결심하고 환관장에게 간청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말씀을 붙잡고 사는 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도 감수했습니다. 죽음을 불사한 믿음의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예수님 시대의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수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놓여 있습니다. 어린 학생부터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매일 거대한 상황의 파도가 우리를 덮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황 자체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과거에는 순교의 위협이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또 다릅니다. 상황은 파도의 높낮이처럼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것을 핑계 삼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선명하게 살아가는 자가 진정한 의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얼마나 상황에 종속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자주 상황을 핑계로 삼았습니까? 닥친 환경 때문에 행동을 합리화했다면, 우리는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가 하나님 앞의 진정한 의인입니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이사야 57:2)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은 평안입니다. 상황이 아닌 말씀을 바라보며 살 때,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내적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순교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평온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는 기록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 충만한 평안이 외부로 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얼굴에는 평안이 깃들어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조차 그들을 압도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평안을 갈망한다면, 내면의 요동치는 불안을 잠재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그 내적 평안이 우리로부터 흘러나와 가족과 이웃에게까지 전해질 것입니다.
거짓과 요동하는 악인
그렇다면 악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이사야 57:11)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말하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를 악인이라 정의하십니다. 이는 일관된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기에 거짓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면,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을 일삼고 표리부동한 사람은 그 마음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기에 늘 거짓을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유익을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은 단순한 거짓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선한 모습을 보이고 선한 행동을 하더라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선해 보이는 가면일 뿐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일시적 위장이며, 선한 척하는 위선적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사람은 이렇게 위선적이 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은 악인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또 다른 특징을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잠잠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악한 자들을 인내하며 기다려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악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의 기다림을 오히려 악용한 것입니다.
악인들의 특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시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려 주시는 것인데, 그들은 이를 악을 행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삶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롯에게는 수차례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돔으로 이주한 후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포로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구출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으나 여전히 소돔에 머물렀습니다. 도시가 멸망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경고하셨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천사들이 손을 잡고 이끌어 내었으나, 뒤를 돌아본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도시가 멸망한 후에도 롯은 작은 동굴에 숨어 여전히 상황을 관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유보된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오용한 결과, 롯은 딸들과 범죄하여 영원히 성경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악인들이 받게 될 형벌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 57:20-21)
악인의 마음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아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거짓을 말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평강을 잃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은 소용돌이치며 진흙탕처럼 혼탁해집니다. 이러한 내면의 혼란은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악인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경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악인과 함께하면 그 진흙물이 우리에게도 튀게 됩니다.
요동치는 마음은 생각으로,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며, 그 행동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악인을 가까이하면 이러한 불행이 우리에게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의인과 악인만 있을 뿐 제3의 길이나 중립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든지 사탄 편에 서든지 명확히 선택해야 합니다.
둘째,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진정한 의인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상황을 핑계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의인의 길입니다.
셋째, 악인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기에 거짓이 나오고 평강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오랜 인내와 기다림을 악용하며 거짓을 일삼는 악인의 마음은 진흙처럼 더러운 것들이 끊임없이 솟구쳐 오릅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의인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고,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3의 길은 없습니다. 의인 아니면 악인입니다. 오늘도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돌아가,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참된 의인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