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장

성경
이사야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이사야 58장

팔방미인을 찾아서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우리는 팔방미인이라 부릅니다. 전공 분야는 물론 다른 영역에서도 재능을 보이며, 개인적 역량과 함께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까지 겸비한 인물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선뜻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희귀하고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하기보다 한두 가지에 집중하여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조언합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비슷한 원칙을 제시하십니다. 모든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두 가지 핵심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정수를 요약하시면서,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천명하셨습니다.

반쪽짜리 경건의 실상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전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내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이사야 58:1)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목소리를 높여 백성들의 죄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도 반복되면 식상해지는데, 하물며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를 크게 외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를 강력히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적 사명입니다. 오늘날 선포되는 말씀도 살아있는 예언자적 메시지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단지 위로와 격려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때로는 거슬리지만 영혼에는 약이 되는 말씀으로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하신 핵심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추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이사야 58:3)

백성들은 금식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행위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헌신을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원망했습니다. 금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예배드리는데 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냐는 불평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는 바로 그날에 오락을 추구하고 사람들을 압제했습니다. 하나님께 종교적 행위는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삶을 정결하게 하고 온전히 헌신하지는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핵심 문제는 이웃과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종들을 학대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노역을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사야 58:4)

금식하면서도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논쟁과 다툼을 일삼으며,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억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금식은 받지 않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의 금식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와 경건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은 기도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진정으로 상달되기를 원한다면,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 진실성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성전 안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처럼, 삶의 현장에서 예배가 온전히 구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신 것처럼,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성전에서 올리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삶의 자리에서 드리는 실천적 기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일상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적 행위에만 열심이면서 약한 자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을 어찌 경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이 완성되려면 연약한 자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반쪽짜리 경건에 머물 것입니까? 완전한 경건을 향해 나아가려면 할 수 있는 한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7)

나누어주라는 명령입니다. 움켜쥔 손을 펴서 베풀고 나누어줄 때 우리의 경건이 온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완전한 경건은 과도한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같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만 사랑을 표현하시고 증거를 보이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보호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오늘도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건도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경건의 진정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우리의 주일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려면, 월요일부터의 삶이 그 예배를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이사야 58:8)

이 약속의 핵심은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를 호위하리라"는 것입니다. 공의는 히브리어로 '체다카(צדקה)'입니다. 이사야 신학의 핵심은 '미쉬파트(משפט, 정의)'와 '체다카(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율법이 정의(미쉬파트)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실천하는 것이 공의(체다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천하고 공의로 행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의 뒤를 호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시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말씀을 공의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말씀을 행하고 전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를 호위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통합된 완전한 경건입니다. 반쪽짜리 종교 행위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온전한 경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성전에서 시작되어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성됩니다. 주일예배의 진정성은 월요일부터의 삶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사랑을 증명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의로 행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를 호위하심을 확신하며, 이러한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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