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이사야 59장
길을 막는 장애물
고속도로에 낙하물이 떨어져 있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고가 접수되면 고속도로 순찰대는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하여 장애물을 제거합니다. 보행로든 차로든, 통행로에 놓인 장애물은 언제나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됩니다. 따라서 철저한 관리와 즉각적인 제거를 통해 안전한 통행 환경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물리적 통로의 관리가 중요하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적 통로는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죄라는 장애물이 존재할 때, 그 관계는 필연적으로 손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고,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인 죄악이라는 장애물을 회개를 통해 제거하라는 긴급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귀는 문제가 없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사야 59: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 유다 백성들에게는 앗시리아가 당면한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위기는 약 100년 후에 닥칠 바벨론의 침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재앙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이 일어나 유다를 삼키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죄악의 삶을 계속한다면, 국가의 멸망은 시간문제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가 세상을 떠난 후,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순간, 뜻있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 심지어 그동안 영적으로 무감각했던 이들까지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구원을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는 결국 멸망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의문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계신다면 왜 성전이 불타는 것을 방관하시는가? 왜 당신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계시는가?" 이러한 절망적인 질문들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이미 100년 전 이사야의 예언 속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도 아니고 여호와의 귀가 둔하여서도 아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은 여전히 강력하시며, 그분의 예민한 귀는 모든 간구를 정확히 듣고 계십니다.
출애굽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복적으로 상기시키셨습니다: "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 전능하신 손이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의 속박을 깨뜨렸고, 광야 40년 동안 백성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반석을 치시자 생수가 솟아났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셨으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어둠 속에서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능력의 손이 어떻게 짧아질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귀는 언제나 세심하게 우리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불평과 원망까지도 놓치지 않으셨고, 심지어 모압 땅에서 룻과 나오미가 나눈 대화까지도 들으시고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은 멸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반응을 예견하시고, 이사야를 통해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진짜 문제는 죄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2)
모든 문제의 핵심은 죄라고 하나님께서 진단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개입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은 멈추시고, 거룩한 얼굴은 외면하시며, 완전한 귀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죄가 이토록 무서운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지만, 동시에 죄를 철저히 미워하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셨고, 노아 시대에는 홍수 심판을 내리셨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단지 자비롭고 인자하신 분으로만 이해하려 하지만, 이는 불완전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공의로운 심판주이십니다. 절대적 권능의 소유자이시며, 온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전능자이심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회개를 통한 형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힘없이 소통되는 상태, 우리는 이를 형통이라 부릅니다.
많은 이들이 형통을 물질적 풍요나 권력의 확장, 원만한 인간관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제한적인 이해입니다.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창세기의 요셉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혀 있었고,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형통하다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형통의 참된 의미는 요셉과 하나님 사이에 죄의 장애물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열려 있는 영적 형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형통이 있을 때,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그를 감옥에서 해방시키셨고, 완전한 귀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형통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완전한 소통을 이루는 영적 형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로 매 순간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죄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 사는 영적 형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와 영원토록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죄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이사야 59:20)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 중에서도 오직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혈통이나 전통이 아니라, 죄를 떠나는 결단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조건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내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내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내 입에서와 내 후손의 입에서와 내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59:21)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지려면,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매일 세상을 살아가며 묻어오는 죄의 때를 정결케 해야 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마음과 입술과 생각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전능하시며, 우리의 간구에 응답할 완전한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둘째,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입니다. 물질적, 관계적 성공을 넘어서는 영적 형통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될 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셋째, 지속적인 회개가 형통의 열쇠입니다. 죄의 문제는 매일 새롭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날마다 진실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형통이 우리 인생의 최고 가치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회개를 통해 그 형통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