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장
부모의 시선, 하나님의 마음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 자녀가 어떤 상황에 있든 가장 영광되고 빛나는 존재로 보입니다. 내 자식이 귀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자처럼 보이는 것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부모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반면 자녀들은 자신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압니다. 실력이 부족해 시험에 떨어지고, 능력이 모자라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며, 물질이 없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부모에게 효도다운 효도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미안해합니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볼 때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귀하고 아름답고 존귀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능력을 가졌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든, 하나님 앞에 어떤 성과를 보여드리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회개하는 백성으로 있는 것만으로 당신의 백성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하나님의 진정한 속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기의 끝과 새로운 시작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시대뿐만 아니라 100년 후와 700년 후까지 예언합니다. 100년 후는 남유다가 계속 죄악의 길을 걸으면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며, 700년 후는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메시아 예언입니다.
실제로 100년 후 남유다는 망하고 바벨론으로 70년간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포로 기간 70년이 지나면 그들은 회개한 백성이 되고 겸비한 자들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70년 포로기가 끝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엎드리고 회개한 자가 되어 귀환하는 장면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려낸 내용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1)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하시며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너에게 임하였다"고 선언하십니다. 70년 포로기가 끝났으니 일어나서 나아오라,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니 기쁨과 영광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70년이라는 시간이 채워졌기 때문에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였다", "네 빛이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회개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70년 동안 단 한 조각의 회개도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의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면, 70년이 아니라 70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70년의 기간은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이킨 자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59장에서 본 것처럼 죄는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죄를 치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지만, 죄는 지독하게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게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이사야 60:4)
현실과 하나님 시각의 차이
1절과 4절을 읽으면 더없이 영광스럽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먼 곳에서 아들들이 오며 딸들이 안기어 오는 영광스러운 광경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무려 70년이라는 긴 세월입니다. 그 기간 동안 타국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자들입니다. 포로에게 무슨 영광과 기쁨이 있겠습니까? 두 세대, 세 세대를 이어 바벨론에서 살다가, 그 나라마저 망하고 페르시아가 주인이 된 시대에 돌아옵니다. 게다가 모두가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서 정착하고 뿌리내린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라가 독립한 것도 아니고 단지 본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만 받았을 뿐입니다.
역사는 증언합니다. 1차 포로 귀환자들인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자들의 숫자는 미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을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성전을 재건할 수 없을 만큼 부족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성전 재건에 힘을 내라고 격려하실 정도로 연약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영광스럽게, 우리가 보기에는 과장되게 그들의 귀환을 그려내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시각으로 읽어야 합니다. 회개한 백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으로 볼 때는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루한 옷차림도 문제가 아닙니다. 70년 동안 돌이키고 회개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들을 보실 때, 하나님은 어떤 영광을 더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존귀하게 보십니다.
"그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이사야 60:5)
바다의 부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은 실제로 올 가능성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부와 재물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앞서 이렇게 선언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기쁘고 행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마음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가 떠오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그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바로 이러했을 것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환'을 보면 그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발은 다 벗겨져 있고, 굶주려 얼굴은 움푹 패여 있습니다. 거지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아들을 영광 중에 맞이합니다. 아들을 껴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잔치를 열고, 살진 송아지를 잡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세상에서 성공한 아들의 금의환향보다 더 귀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회개한 자를 하나님은 이토록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자가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일까요? 돈과 권세를 양손에 쥐고 "하나님, 이것을 보십시오"라며 자랑하는 자일까요? 아니면 겸비하여 엎드리고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는 자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엎드려 회개한 자에게 당신의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영광을 누리려면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이사야 60:10)
하나님께서 노하여 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70년 포로기가 끝나고 돌아오며 은혜를 받은 까닭은 그 사이에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돌이킴은 곧 복의 시작입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이사야 60:15)
하나님은 이런 영광을 사랑하는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하셨습니다. 회개한 자들을 보실 때 아버지의 눈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힘겨워할지라도, 엎드려 회개하는 자를 보실 때 하나님은 가장 귀하고 존귀한 모습으로 보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은 한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외적 조건이나 성과가 아무리 초라해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마음 자체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며, 어떤 영광을 더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존귀하게 보십니다.
둘째, 진정한 영광은 회개를 통해 임하며, 돌이킴이 곧 복의 시작입니다. 70년 포로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회개와 돌이킴의 은혜로운 기간이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했습니다. 죄를 치워야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는 현실을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약속입니다. 남루한 포로 귀환자들을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보시고, 바다의 부와 이방의 재물이 돌아온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회개한 자녀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마음을 품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가장 귀한 영광을 누리려면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