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4장

성경
이사야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이사야 64장

용두사미 기도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점차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일들을 수없이 목격하게 됩니다. 이를 용두사미라 부르는데, 떠들썩하게 시작했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비록 미약하고 연약하게 시작했더라도 날이 갈수록 조금씩 성장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기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간구의 기도를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면 그 불길이 한순간 타올랐다가 곧 사그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직면하고 돌이키는 회개의 기도로 시작하면, 그 회개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결국 겸손히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깊은 기도로 인도합니다. 기도를 용두사미로 끝내지 않고 처음부터 꾸준히 지속하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토기장이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기도자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기도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63장에서 기도자는 포로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직시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과거의 행복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켜본다는 것은 더욱 아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기도자는 과거 자기 민족이 하나님과 친밀했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열성이 능하신 행동으로 나타났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는지를 성찰해 보았습니다. 그때는 죄가 없었거나, 설령 있었더라도 속히 돌이키고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반역으로 인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모두 멸망했고, 이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임을 깨달아,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회개에 이어지는 것이 바로 64장입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사 64:1)

이제 본격적으로 간절한 청원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기도자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이 땅에 친히 내려오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너무나 답답하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속히 내려오셔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구를 올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63장의 회개가 있기에 64장의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아름다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계속해서 간구합니다.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사 64:2)

이 기도자의 마음은 깊은 상처와 자존심의 상함으로 가득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민족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현실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이겠습니까? 한때는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자유인으로 살았고, 성전에서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예배의 자유조차 없고 성전은 불타 사라져버렸으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백성들을 섬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력한 불길로 섶과 같은 이방 백성들을 사르시고, 뜨겁고 맹렬한 불로 그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자는 곧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고 있지만, 모든 민족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과연 이런 간구를 드릴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함으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5)

"이 현상이 이미 오래되었다"는 고백은 포로로 끌려온 이후에도 백성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상태에서 어떻게 감히 구원을 바랄 수 있겠느냐는 탄식이 묻어납니다. 기도자는 민족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6)

기도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백성이 부정한 자 같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할 수 있겠느냐는 깊은 자괴감이 드러납니다.

얼핏 보면 이 기도자가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는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 원수들을 심판해 달라고 간절히 구하더니, 이제는 자신감 없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으로 깊이 기도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적 체험입니다.

하나님 앞에 오래 그리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이들은 기도할수록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기 쉽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금식과 십일조, 열심 있는 섬김을 내세우며 자랑합니다.

그러나 세리를 보십시오. 그는 멀리서 감히 가까이 오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통회합니다. 오직 한 가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간구의 기도를 올리다가도 문득 자신의 연약함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할수록 아주 작은 먼지 같은 죄조차도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래 기도하는 이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눈물의 기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저렇게 울며 기도하는지, 왜 그토록 애절하게 부르짖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자는 먼저 회개했고, 민족의 상황을 직시했으며, 그 후에 간구했습니다. 간구하면서도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마침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사 64:8-9)

기도자는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자신들을 진흙으로 고백합니다. 진흙은 토기장이의 손에서 온전히 빚어지는 존재입니다. 토기장이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백성"이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이렇게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회개했고 간구했으나, 간구할 자격조차 없는 죄인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기며 오직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특히 "우리는 주의 백성"이라는 고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지금 그들은 바벨론에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와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바벨론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잃은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의 백성"이라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이것은 결단입니다. 비록 바벨론에 있지만 바벨론의 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포로로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만 살겠다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이 기도자의 기도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기도는 회개에서 시작하여 청원으로 이어지고, 청원 중에도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결국 하나님의 긍휼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깊고 성숙한 기도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반드시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돌이킴과 회개 없이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키는 회개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둘째, 우리는 진흙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온전히 맡겨지듯, 우리도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가정과 일터를 주님의 손에 맡기는 온전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셋째, 주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지켜야 합니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룩한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회개에서 시작하여 간구로 이어지고,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긍휼에 온전히 의지하는 깊고도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우리도 진흙과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우리 삶을 온전히 맡길 때, 비로소 참된 기도의 깊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한 기도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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