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장

성경
이사야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

이사야 9장

끝나지 않는 드라마

우리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드라마에는 명확한 시작과 전개, 그리고 결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드라마는 분명한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드라마나 영화에 비유하곤 하지만, 실제로 영화처럼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인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인생은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과정 중에 중단되거나 시작조차 하기 전에 막을 내리는 인생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전에 이 약속의 성취를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누린 것이라고는 단지 이삭 한 명을 품에 안아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에서 완전히 실현되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남유다가 멸망한 기원전 586년 이후, 무려 2,500년 이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에야 비로소 그들은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태어나고 죽었겠습니까? 나라 잃은 민족으로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설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로 살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려 애쓴 그들이 당한 핍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시 한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유대인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유대인들이 한 일이라고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낸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의 약속입니다.

흑암에 비칠 빛

기원전 8세기 남유다, 특히 아하스 왕의 통치 시대는 격동과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세계 패권은 앗수르가 장악하고 있었고, 이에 맞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유다에게도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이를 거절하자, 분노한 두 나라는 오히려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첫 번째 침공은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두 번째 침공을 앞두고 아하스와 백성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심시키려 하셨습니다. 적들을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하시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와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고 하시며,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앞에 나아와 간구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놀라운 미래를 선포하십니다. 메시아 탄생의 예언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1-2)

현재 그들에게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짙은 흑암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스불론과 납달리, 멸시받던 이방의 갈릴리에 새로운 빛이 비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기원전 8세기 아하스 왕 시대의 절망적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사야 9:3)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번성하게 하시고 기쁨을 더하신다는 약속은 당시 상황에서는 믿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나라는 전쟁의 위협 앞에 떨고 있었고, 백성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워했는데, 더 강대한 앗수르의 위협까지 생각하면 완전한 절망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을 약속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한 아기의 탄생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예언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흑암의 땅에 빛이 비치고, 멸시받던 스불론과 납달리와 이방의 갈릴리가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며, 나라는 존귀함을 회복하고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에게 이 말씀이 과연 현실적으로 다가왔을까요? 그들의 현실은 처참했고, 미래는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더욱이 이 예언이 성취되기까지는 7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후 7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700년 동안 수많은 세대들은 계속해서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과연 이 약속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누가 이 일을 이루느냐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선포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흑암은 물러가고 빛이 임하며, 절망의 땅이 소망의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눈에는 앗수르가 역사의 주인처럼 보였습니다. 눈앞의 위협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군사력에 굴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700년 후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며, 그때 변방 갈릴리에서부터 새로운 빛이 비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열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선포입니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이 진리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한때 불패의 신화처럼 보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아니 이미 죽으셨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는 동안, 일본 제국이 아시아를 유린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치도 무너졌고 일본 제국도 패망했습니다. 역사의 최종 심판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들이 있고, 그들이 마치 역사의 주인인 양 행세합니다. 교만하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며 약소국들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열심이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흑암 속에서 절망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빛과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우리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선택은 명확해야 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 중에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앗수르 편에 서려는 자들이 있었고, 아람과 북이스라엘 편에 붙으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당장 눈앞의 힘이 더 확실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려면 먼저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길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대,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때에도 여전히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땅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여호와의 열심이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적인 사랑이 역사를 이끌어가시고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둘째, 현실이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700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메시아는 오셨고, 2,500년 후에도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 편에 확고히 서야 합니다. 눈앞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영원한 주권자이신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우리의 모든 어둠을 밝히시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실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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