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족보
창세기 11장
세상 족보와 성경 족보의 차이
과거에는 아주 편안하게 했던 일이 세월이 바뀌어서 이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되고, 세월이 바뀌어서 하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자기 집안 자랑입니다. 집안이 어떠한지, 할아버지 때는 어떤 일을 했는지, 가문이 어떠한지, 그 조상 중에는 누가 어떤 벼슬을 했는지를 과거에는 당연히 자랑하고 당연히 내세웠지만, 요즘은 그런 자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특히 취업 면접이나 입학시험 면접에서는 집안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물어서도 안 되고 대답해서도 안 되는 항목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족보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보면 성경이 그렇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책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족보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자기 집안 자랑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자기 집안 자랑은 좋은 일을 자랑합니다. 누가 우리 할아버지들 중에 어떤 벼슬을 했는지, 집안이 어떠했는지, 가문의 돈은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공과 덕을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어떤 사건을 말할 때 족보가 언급되고 누군가 믿음의 조상을 소개할 때 족보가 언급될 때는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반드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분에게 이렇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족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집안의 약점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아브라함의 족보가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대를 이어서 누구의 뿌리에서 나왔으며 그가 태어난 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족보를 통해서 소개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태어난 족보의 흐름을 보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약점투성이고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 많은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에게 닿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가인의 족보가 아닌 아담, 셋, 에노스로 이어지는 예배 공동체의 족보에 속합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 이후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 인류를 다시 번성시켰는데, 아브라함은 그중 셈의 후손입니다.
"나홀은 29세에 데라를 낳았고" (창세기 11:24)
나홀은 아브라함의 할아버지이고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29살에 낳았습니다.
"데라는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세기 11:26)
할아버지는 스물아홉에 아버지를 낳았는데 아버지 데라가 자녀를 낳은 나이를 보면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70세에 똑같이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뜻이 아니고 70세부터 자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나홀은 스물아홉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스물아홉보다 훨씬 이후인 70세가 되어서야 자녀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에게도 집안내력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70세가 되어서 자녀를 낳기 시작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란을 떠날 때 75세가 되어서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창세기 11:30)
이것은 족보에서 금기시되는 항목입니다. 고대 사람들이 족보를 기록하는 이유는 자손의 번성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할아버지는 몇 명의 자녀를 낳았고, 아버지는 얼마의 자녀를 낳았으며, 나는 또한 그중 누구이고, 나는 누구를 낳았다고 기록합니다. 고대 농경사회와 목축사회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곧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집안을 보면 그 숫자가 아주 많지 않습니다. 숫자가 적고 그것도 집안 내력으로 할아버지는 스물아홉에 아버지를 낳았지만 아버지 데라는 70세 이후가 되어서야 그것도 자녀 세 명을 겨우 낳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집안 내력이 되어서 아브라함도 75세가 되어도 자녀가 하나도 없었고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 그의 나이는 100세였습니다. 이것은 족보에서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부끄럽기 때문에 족보를 기록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족보는 이러한 약점을 숨김없이 그대로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세기 11:28)
또 한 가지 그 집안의 약점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큰아들 아브라함 그리고 막내아들은 하란입니다. 그런데 막내아들 하란이 아버지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라고 해봐야 겨우 셋인데 그중에 한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부모의 심정이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손이 귀한 집안에 그 자손 중의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집안의 족보는 내용적으로 보면 손은 귀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약점 중에 큰 약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이 집안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번성할 수 있는 집안이요, 하나님께서 이 집안을 붙들어 주셔야만 은혜로 살 수 있는 집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약점이 무엇보다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족보들은 이런 약점을 한두 가지씩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을 살펴보면 어떠합니까? 다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해서 자녀를 낳은 다말입니다. 그런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부끄러워서 어떻게 족보에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여관집을 운영하던 여인 라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인의 이름을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굳이 이런 여인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합니다. 이방여인 룻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도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나는 약점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약점이지만 하나님은 이 약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강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족보는 세상이 자랑하는 족보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약점을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도 자랑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물질이 많지도 않고 조상들 중에 특별한 벼슬을 한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늘나라 족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자랑할 것은 인간적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족보는 우리에게 은혜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혈통의 족보와 강함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약점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강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권능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슴을 벅차게 하고 뛰게 하고 행복하게 하니 그 기쁨 가운데 당당하게 믿음의 투쟁을 하며 믿음을 굳게 지키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