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이후
창세기 13장
인생의 상실과 이별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주시고 결혼시켜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결혼 제정의 원리 가운데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나옵니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신 말씀입니다. 남자는 아담이고 여자는 하와인데 아담은 육신의 부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결혼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의 결혼이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올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결혼의 원리를 제정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결혼시켜서 떠나보낼 때는 양가 감정이 존재합니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도 있습니다. 사위를 맞이하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리고 아프고 서운한 마음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떠나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행복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마음과 상실감이 함께 존재합니다.
좋은 일로 결혼이라는 제도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도 가슴이 시리고 상실감이 있는데, 슬프고 아픈 이별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건강도 떠나보내고 우리 재산도 떠나보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의 상실과 아픈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극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롯과의 이별과 아브라함의 상실감
아브라함과 사래와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는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은 채 이집트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의 장소인 가나안 땅을 떠난 대가를 그들은 치러야 했습니다.
이제 이집트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 사래를 지키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래를 취합니다. 위기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립니다. 바로는 깜짝 놀라 아브라함을 불러서 말합니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그리고 떠나보낼 때 은금과 각종 패물과 육축을 함께 주어서 떠나보냅니다.
감사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자신의 가정에 미친 재앙이 두려워서 바로는 은금 패물을 주어서 떠나보냅니다. 아브라함과 사래와 롯은 그 은금과 많은 재산을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겝으로 올라가니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세기 13:1-2)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빈털터리로 내려갔는데 기근 때문에 생계를 위해 내려갔는데 바로를 통해서 은금과 가축을 받아서 올라옵니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서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목축했습니다. 농사도 잘 되고 가축도 늘어납니다.
하지만 물질이 많아지면서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목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정된 목초지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자신의 가축을 목축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세기 13:6-7)
이것을 보면 처음부터 아브라함과 롯은 자신의 소유를 따로 구분했습니다. 같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재산, 롯의 재산이 따로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들은 주인들의 사이가 좋으면 다투지 않습니다. 종들이 다투는 이유는 주인들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본 아브라함이 위기감을 느낍니다. 지금은 종들끼리 싸우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롯이 아브라함에게 싸움을 걸어올 것, 그리고 그도 롯과 감정이 안 좋아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립니다.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이제 너는 나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 안에서의 선택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선택하고 주신 이 땅 안에서 서로 다른 목초지를 찾아서 떠나자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세기 13:10-11)
롯은 소돔 땅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소돔 땅은 여호와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롯이 소돔 땅을 선택한 이유는 명백했습니다. 애굽 땅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왔습니다. 나일강을 보았습니다.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옥토를 보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롯은 하나님에 대해서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사랑하셨다면 어떻게 이렇게 기근이 있는 땅을 주실 수 있는가? 이집트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땅을 주셔야지 왜 하나님은 이런 땅을 주셨는가?"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한 번 보고 온 나일강과 그 비옥한 땅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할 순간이 오자 그는 이집트와 비슷한 소돔 땅을 선택해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아브라함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롯은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은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자식 롯을 남겨놓고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동생이 남긴 아들, 그의 조카 롯을 친자식처럼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다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올 때까지 그를 늘 자식처럼 함께 데리고 다닙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내심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자녀가 생기지 않으면 롯을 의지했을 것입니다. 롯을 통해서 후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믿을 만한 구석이었고 아브라함과 사래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롯은 건장한 청년입니다. 이 아이가 이제 나에게는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떠나가 버립니다. 롯이 떠난 이후에 아브라함은 배신감과 상실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떠나는 것이 많습니다. 사람도 떠납니다. 평생 나와 함께할 것 같았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납니다. 좋은 이유로 떠나면 문제가 다르지만 해묵은 갈등과 사소한 일로 등을 지고 떠나서 이제는 만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도 떠납니다. 시력도 예전 같지 않고 걷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소화력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재물도 떠납니다. 과거에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열심히 벌 때는 원하는 대로 쓰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도 사람도 건강도 모든 것이 떠나는 것만 있고 찾아오는 것,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때로는 이것 때문에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위로와 새로운 약속
아브라함도 역시 이 문제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두문불출하며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느꼈던 감정은 상상 이상으로 큰 충격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창세기 13:14)
"너는 눈을 들어"라는 이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마루만 보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눈을 들라고 고개를 들라고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보여주는 곳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해 주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3:15)
"보이는 땅을 주신다"는 말씀은 사실 아브라함의 귀에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의 귀를 번쩍 뜨게 하는 말씀은 "너와 네 자손에게"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혈육이었던 유일한 혈육 롯이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하는 이 말씀은 이제 너에게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떠난 롯을 그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고 새로운 가치를 주고 새로운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떠난 이후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굳게 잡고 붙잡으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3:17)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저앉아 있지 말고 다리에 힘을 내고 일어나서 종과 횡으로 동서남북을 두루 다녀보라, 그 땅을 너에게 줄 것이다, 너에게 준 그 땅은 네 자손의 것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상실의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많은 것들이 떠나간다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상실의 아픔 가운데 고개 숙이고 주저앉아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방향으로 눈을 들고 일어나 걸어 다녀 보십시오.
둘째, 떠난 것 이후에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이 기다립니다. 떠난 것, 눈에 보이는 것이 떠난 이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얻으십시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 희망은 떠난 사람 때문에 낙심한 우리의 마음을 상심한 우리의 심령을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아브라함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말씀이 현실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