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는 살면서 오해를 받거나 오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해를 하는 사람은 내가 하는 것이 오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그 확신을 여러 사람들에게 확인받고 인정받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퍼지게 되고 나중에는 수습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오해받은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많이 오해받고 계시고 지금도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때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것입니다. 성경을 가볍게 만나는 분들이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다, 이방 민족을 싫어하신다, 전쟁을 좋아하신다, 난폭하시다, 여자와 아이들 소수자들을 미워하신다, 권력 있는 자들을 좋아하신다, 사람을 죽이기를 즐겨 하신다는 등의 오해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더 깊이 읽어보면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깊이 있게 본질적으로 살펴보면 지금까지 가져온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한꺼풀을 벗겨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에 일어난 문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자손에 대한 약속이고 또 하나는 땅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실 땅에 대한 약속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더 관심 있는 약속은 자손의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심 하나님이 자녀를 주지 않으면 조카 롯을 후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갑자기 소돔 땅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왕들의 전쟁에 휘말린 롯을 구출해 왔지만 그는 다시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낙심한 그는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몸에서 날 자라야 후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며 그런 과정에서도 아브라함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했는데 세월이 지나 10년이 지났습니다. 75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는데 85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스스로도 늙어가고 있음을,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이제는 생산하기가 불가능함에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 사래와 함께 하나님이 원치 않은 일을 벌이고 결정하고 실행해버렸습니다. 사래에게는 몸종 하나가 있었는데, 애굽 여인 하갈입니다.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생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순조롭게 임신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함에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세기 16:4)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했습니다. 멸시하다는 말은 가볍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여종이 여주인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얌전하고 천진하고 착하고 항상 순종적인 줄 알았던 하갈이 임신한 줄 알자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주인의 말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사래는 분노했습니다. 배신당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아브라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갈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아브라함에게 가서 이 상황을 해결하라고 따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함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세기 16:6)
아브라함은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 좋을 대로 알아서 하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에는 더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믿음의 조상의 가정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임신한 몸으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임신한 여인이 집을 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학대가 모질었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까지 몰렸다는 뜻입니다. 그녀가 살기 위해서 집을 나간 것입니다. 하갈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 하나만 없어지면 끝난다고. 그리고 이 집에서 그녀는 이방 여인인데 애굽에서 올라온 몸종인데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온 하갈
그런데 나와 보니 태중에 있는 아기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찾아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길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가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세기 16:7-9)
복종하라는 말보다 하갈을 더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 것은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에는 집에서 기른 군사 318명이나 있습니다. 종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는 사람을 풀어서 하갈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임신한 상태의 여종이 가봤자 어디까지 갔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뜩치 않은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가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세기 16:10-11)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임신한 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중에 있는 아기의 안전입니다. 아기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갈 자신의 안전도 보장하겠다는 뜻입니다. 하갈에게는 이것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갈의 신앙 고백
사실 하갈은 이방 여인, 애굽 여인입니다. 애굽에서 이 가정에 올라왔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애굽에서 섬기는 신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형상이 없습니다. 애굽에는 우상이 많았는데 이 가정에는 어떤 형상도 없습니다. 그는 항상 그런 하나님을 신비롭게 신기하게 여겼는데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서 안전을 보장하십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려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신앙 고백을 그 자리에서 올렸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헤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창세기 16:13-14)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신앙 고백이 하갈의 입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를 고백한 것은 창세기 22장의 일입니다. 그런데 하갈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우물 하나를 발견했는데 우물의 이름도 "브엘라헤로이(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이의 우물)"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입니다. 그것도 몸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여인을 살펴주셨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해소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세상 모든 만민에게 미쳐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살피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는 그 여인을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찾고 계시고 돌보고 계시고 살피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나를 본다는 의미이고, 죄짓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눈동자 같이 우리를 보고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입으로 함부로 원망하지 말고 우리 몸으로 죄짓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방 여인의 입을 통해서 고백된 하나님의 이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종 하갈도 살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왕 같은 제사장 된 우리를 살피지 않으시겠습니까? 항상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