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실수와 영적 성숙
창세기 20장
실수와 실력의 차이
운동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화려한 기량을 선보이고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땀과 눈물을 쏟아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자기 기량을 향상시켜서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실전에서 자기 실력을 드러냅니다. 만약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지 않고 실력을 갈고 닦지 않고 훈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분명히 실전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쉬운 볼 처리를 하지 못하고 누가 보더라도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면 처음에는 본인도 실수라고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도 실수이겠거니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실수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 사람들은 감독, 코치들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열심히 연마하고 갈고 닦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훈련하면 자신의 약점을 잘 알게 됩니다. 나는 이것을 잘하고 혹은 여기에 문제가 있구나. 그러면 그 문제를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고친 상태에서 실전에 나와야 실수를 줄일 수 있고 범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고 두 번 세 번 똑같은 잘못을 범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실력이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한 번은 실수이나 두 번 세 번 같은 문제에 빠지고 넘어지면 그것은 실수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의 반복된 거짓말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똑같은 죄, 똑같은 잘못을 범합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창세기 20:1)
아브라함과 사라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축을 하면서 초원을 찾아서 양떼, 소떼, 염소 등 자신의 가축을 먹이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닙니다. 가나안 땅 가장 서남쪽 접경지역 그랄 땅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전적이었고 거칠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땅에 가서 목축을 해야 하기는 하는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것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창세기 20:2)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습니까? 사라를 빼앗길까 봐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사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기 때문에 이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거짓말이라 할 수 없으나 아내를 아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돌아보지 않는 결과
사실 창세기 12장에서 그때는 믿음의 초창기였습니다. 하란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너는 일어나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 말씀을 붙들고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서는 심한 기근이 있습니다. 기근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브라함은 사라와 롯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아내라 말하지 않고 누이라고 말합니다. 이집트 왕 바로가 사라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겨우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잃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제일 큰 것이 롯의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롯은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보았습니다. 나일강 주변의 비옥한 목초지를 보고 비옥한 농경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곳까지 온 우리에게는 기근의 땅을 주셨는데 하나님 없는 이방인에게는 이렇게 화려하고 좋은 땅을 주셨구나" 롯은 거기에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립니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와서 롯은 소돔 땅을 택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롯의 가정이 어떻게 됩니까?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롯의 두 딸들은 그 땅의 문화에 심취해서 그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를 생산합니다. 롯은 아내를 잃고 자녀들의 믿음을 잃고 영적인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혈육, 유일한 혈육이었던 롯의 믿음이 이집트에 가서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에게 은금패물과 종들을 얻어서 올라왔습니다. 거기에 함께 딸려온 종이 하갈입니다. 하갈은 그 가정의 불씨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가정에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생산합니다. 이집트로 내려간 것, 그곳에서 거짓말하고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도미노 현상,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아브라함 가정에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쯤 되면 아브라함은 돌이키고 반추해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이집트에 가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돌이키고 회개하고 살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돌이키지 않고 살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이 생기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영적 반성의 중요성
사람들은 영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경험에 따라 행동합니다. 본능과 경험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영적인 반성을 하고 자신을 돌이키면 본능을 넘어서고 경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점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물질에 약한 사람에게는 물질을 가지고 끊임없이 시험하고 사람 관계에 약한 분들은 사람 관계를 가지고 사탄은 계속해서 공략합니다. 한 번 걸려 넘어졌다고 두 번 똑같은 시험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약점을 공격하기 때문에 인생 살면서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우리가 주변을 살펴봐도 저 사람은 몇 년 전에도 저 문제 때문에 고생하던데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로 저렇게 어려움을 겪는구나. 반성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일어나면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또한 이 상황은 심각하게 엄중한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20장인데 아브라함은 18장에서 하나님과 두 천사를 환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라의 몸을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 엉망이 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민망한 개입
아브라함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함에 따라 그 약속 자체가 엉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개입하십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창세기 20:3)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민망하셨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나 다 같이 공평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개입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사라를 통해서 태어날 약속의 자녀가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의 계보를 이어가는 믿음의 흐름에 있는 자녀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주의로 이 약속을 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리하시지만 그러나 이 상황에 개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부모는 자녀가 사고를 치면 분명히 그 사건에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내 자식을 살려놓고 보아야 하니까요. 부모 입장에서 보면 내 자녀가 잘못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우선 살리고 구하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부모의 심정은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자식을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살려놓지만 하지만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는 이 자녀가 원망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두 번씩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할 정도로 이 미련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세상에게 책망받는 하나님의 사람
이제 자기 꿈에 현몽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아비멜렉이 다음 날 일어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책망합니다.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창세기 20:8-9)
불신자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책망당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향하여 책망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믿음의 사람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책망당합니다. 한 번의 거짓말로 인해서 자신의 본능과 경험에 따른 행동으로 인해서 과거를 돌이키고 반성하지 않는 자신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범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정결하고 그들에게 절대로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반성과 회개 없이는 같은 실수가 반복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의 실패를 철저히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영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본능과 경험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보다 더 정결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불신자에게 책망받는 것은 하나님을 민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정결하고 그들에게 절대로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민망하게 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이런 일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번 잘못된 일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