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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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장

믿음의 고리가 만든 기적

역사의 가정은 의미 없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역사를 돌아보면 섬뜩한 장면도 있고 다행스러운 장면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한국의 유엔군 파병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중에 소련이 있었는데, 소련은 유엔 안보리 이사회 회의에 불참했습니다. 만약에 소련이 그 자리에 참석해서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우리나라에는 유엔군 파병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라면 이 한반도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런 장면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범위를 좀 좁혀서 우리 인생으로 살펴보면 우리 인생에 만약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도 섬뜩한 일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과거의 삶이 고리처럼 연결되어서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후회스러운 고리의 연속도 있고 참 결단을 잘했구나 하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한 연속의 고리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빛나는 순간인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의 순간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연속된 믿음의 승리의 고리가 여호와 이레를 만든 것입니다. 만약 그중에 하나만 없었더라도 그 고리가 끊어졌더라도 여호와 이레는 이루어지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고리: 순종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2)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이삭을 모리야 땅 한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이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하실 거라면 왜 25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는가? 이렇게 아들을 바치라 하실 거라면 왜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후사라" 하셨으며 롯도 다메섹 엘리에셀도 이스마엘도 "네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가? 이제는 하갈도 이스마엘도 쫓아내고 아무도 없는데 이삭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 남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 하면 그럼 하나님의 약속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이런 의문이 들지 않았을까요?

더구나 번제는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인데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어떻게 태워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결단과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똑같이 한 방식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잠을 푹 자고 개운한 상태로 일어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몸부림치다가 결단하고 아침에 일찍 이 일을 실행한 것입니다.

만약에 식사라도 한다면 아들 이삭의 얼굴을 보면 오늘 하지 말고 내일 하자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결단이 변하기 전에 종을 둘 데리고 이삭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여호와 이레의 첫 시작은 아브라함의 순종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 자리에서 "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섰다면, 만약에 아브라함이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지키겠습니다. 하나님, 신앙을 버리겠습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더라면 여호와 이레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놀라운 역사가 기록된 배경은 그 첫 시작이 순종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순종이 과연 무엇입니까? 순종은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 말씀대로 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되고 합리적으로 의심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내 머리로도 충분히 납득되고 내 가슴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동의입니다. 동의와 순종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내 경험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니까 "네, 저는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아름답고 놀라운 축복의 영적인 씨앗이 여호와 이레를 낳았습니다.

두 번째 고리: 신뢰

이제 아브라함은 이삭과 두 종들과 함께 사흘길을 걸었습니다. 모리야 산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두 종들을 남겨두고 이삭과 함께 산을 오릅니다. 그때 종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세기 22:5)

5절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우리가"입니다. 아브라함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번제로 바치고 나만 돌아오리라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리라"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이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칼로 잡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실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분명히 깨닫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레로 가는 두 번째 키워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였습니다. 신뢰는 한 번에 생기지 않습니다. 신뢰는 금방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하나님과 교제하고 오랫동안 믿음생활을 함으로써 내 안에 자리 잡는 확고한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출애굽 백성들은 40년 내내 하나님을 원망만 했습니다. 우리를 출애굽시키고 책임질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들은 굶어 죽을까? 목말라 죽을까? 광야에서 이상한 자들을 만나서 칼에 죽을까? 항상 원망하고 불안해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해 주신 분이고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될 때까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여호와 이레로 가는 두 번째 열쇠였습니다.

세 번째 고리: 시험을 극복함

이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야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세기 22:7)

이삭이 보기에도 이상했습니다. 어린 이삭이 보기에도 항상 아버지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불과 나무, 어린 양을 함께 가지고 갔는데 불과 나무는 가져가나 어린 양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천진하게 묻는 아들을 보며 아브라함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 산에 올라가지만 만약 하나님이 그 산에서 아들을 잡으라고 하시면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아브라함은 큰 시험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아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의 순종과 신뢰를 한 번에 무너뜨릴 만큼 그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험을 이렇게 극복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세기 22:8)

여호와 이레로 가는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시험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인생길에는 항상 시험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시험을 극복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절대적인 신뢰, 믿음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시험거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내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들, 여전히 많은 장벽들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 시험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성취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로 가는 세 번의 관문을 다 잘 극복했습니다. 순종했고 하나님을 신뢰했고 시험을 극복했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3-14)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여호와 이레! 이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 같은 일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산에 올라왔는데 하나님의 준비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로 오기까지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시험을 극복했습니다.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고리가 끊어졌더라면 여호와 이레는 불가능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 이레는 연속된 믿음의 고리가 만든 결과입니다. 순종, 신뢰, 시험 극복이라는 세 개의 믿음의 고리가 연결되어 여호와 이레라는 놀라운 축복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끊어졌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축복을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하루가 믿음의 고리를 이어가는 하루입니다. 오늘 하루도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시험을 극복한다면 오늘의 선한 고리가 훗날 우리 인생의 여호와 이레와 같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오늘의 이 하루가 성실과 믿음과 신뢰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고리를 엮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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