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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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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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실리주의자 에서

창세기 25장

눈에 보이지 않는 명분의 중요성

실용주의 외교가 대세입니다. 이데올로기도 이념도 별로 의미 없고 각 나라에 이익이 되는 대로,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요즘 외교의 흐름이고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혈맹으로 영원한 우방으로 붙잡고 가야 할 나라는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을 통해서 파병을 주도했으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군대를 보냈고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땅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피 흘려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아무리 세상이 실리 외교로 움직이고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민족을, 이 나라를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으로 있게 해준 그 나라의 혈맹 관계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의 삶에도 신앙생활에도 명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명분을 말하면 사람들은 고리타분하다고 말할지 모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명분이 눈에 보이는 실리보다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명분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실리의 가치를 따라 살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명분의 가치를 쫓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삭의 20년 기다림과 응답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바딴아람 아람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세기 25:20-21)

오늘 본문에서도 실리를 쫓아 사는 에서가 나오고 명분을 쫓아 사는 야곱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을 때가 100세였습니다. 25년 동안 길고 긴 기다림 끝에 그 기다림을 통해서 믿음의 부침을 경험한 이후에야 믿음의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했고 결혼한 이후에 자녀가 생기지 않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삭은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오랜 시간 간구하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간구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가정에 자녀를 주셨습니다. 한 자녀가 아니라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60세였더라" (창세기 25:24-26)

40세에 결혼해서 60세에 쌍둥이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20년 동안이나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 때문에 붙잡고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이삭을 낳은 것과 이삭이 결혼해서 20년 만에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은 거의 대동소이할 만큼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그 20년의 기다림 동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이삭이 그 아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했고 그 간구의 기도는 20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그 기도는 오랜 기다림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의 아버지 때의 실수를 이삭이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실수가 가정의 분란과 불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창세기 25:29-31)

에서는 성장해서 들사람이 됩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야곱은 집안에서 조용히 어머니의 일을 돕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와서 배가 몹시 고팠고 마침 그때 야곱은 집에서 팥죽을 쑤었습니다.

야곱은 이때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이렇게 당돌하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명분이었던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둘째였습니다. 쌍둥이로 거의 비슷하게 태어났지만 얼마 먼저 나오지 않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태생적으로 얻게 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태생적으로 둘째가 되므로 아버지의 축복, 장자의 명분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랄 때 장자의 명분은 사실 별로 의미 없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자의 명분, 이것을 야곱은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통해서 장자에게 주시는 영적 축복을 갈망했지만, 그는 둘째였으므로 이 축복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리주의와 영적 가치관의 대립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5:32-34)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특별히 실리주의자였습니다. 한 그릇 팥죽이 내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배고픔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장자의 명분은 거추장스럽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기록합니다. 이것 때문에 에서는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으므로 하나님도 그를 가볍게 여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과 직분과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목회자는 설교할 수 있는 강단을 무겁게 여겨야 하고 직분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직분, 눈에 보이지 않는 직분을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하나님도 우리를 가볍게 여기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집사의 직분, 중직의 직분, 목회자의 직분을 돈 몇 푼으로 바꾸는 일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집사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중직이면 세상과 그렇게 쉽게 손잡고 타협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한순간의 이익 때문에 팥죽 한 그릇과 같은 순간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의 가치와 손잡는 순간 우리의 영적 직분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직분과 가치를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가치를 무겁게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을 하나님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사모하고 갈망했습니다. 반면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실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과 사명, 영적 축복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영적 가치를 세상의 이익과 바꾸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하나님도 우리를 가볍게 여기실 것입니다.

에서처럼 실리주의로 살아가지 마시고 하나님께 받은 명분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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