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
창세기 29장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평하심
교실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한 오해와 불만을 품기 쉽습니다. 그 불만의 상당 부분은 불평등에 대한 것입니다.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개 오해입니다. 선생님은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든 학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학생들이 그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오해를 품을 때가 많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가 더 사랑받는다고 여깁니다.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데 남의 기도는 즉시 이루어지고, 그들에게는 때마다 채우시며 함께하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지라도 모든 자녀를 동일하게 채우시고 인도하시며 이끄십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아람으로 떠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만납니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세기 29:16-17)
시력이 약한 레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물을 보았기에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으며, 야곱이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마음 깊이 라헬을 사랑했고, 외삼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세기 29:18)
감정 표현까지는 좋았으나,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이토록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큰 틀과 원칙을 정한 후 종을 보내 리브가를 데려왔고, 들에서 묵상하며 기도로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뜨거운 열정만 앞세워 자신의 젊은 시절 칠 년을 종처럼 봉사하는 데 바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는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칠 년을 하루같이 섬긴 후, 야곱은 라헬을 달라고 청합니다. 라반은 신방을 차려주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니 레아가 누워있었습니다. 분노한 야곱이 따지자 라반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세기 29:26-27)
주도면밀한 라반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칠 일간의 혼인 잔치를 마치면 라헬도 주되, 다시 칠 년을 봉사하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라헬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야곱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한 여인을 얻기 위해 십사 년의 젊음을 흘려보냈습니다.
닫힌 문과 열린 문 사이에서
문제는 이 가정에 행복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당연히 라헬을 더 사랑했고, 레아는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세기 29:31)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레아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한쪽 문이 닫혀 있으면 또 다른 문을 여시는 하나님. 레아도 라헬도 모두 하나님의 딸이었기에, 사랑받지 못해 기죽어 있는 레아에게 자녀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수용하는 레아의 태도였습니다. 태를 열어주신 하나님을 먼저 찬양해야 했지만, 그녀는 라헬과의 끝없는 경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9:32)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을 향해 "내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경쟁심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려는 욕심이 앞섰습니다.
둘째 시므온(들으셨다), 셋째 레위(연합함)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관심은 남편의 사랑과 라헬과의 경쟁에만 쏠려 있었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세기 29:35)
넷째 아들을 낳고서야 비로소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셨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첫째부터 깨달았어야 할 진리를 넷째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레아의 모습이 오늘 우리와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여시는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공평하게 일하십니다. 피해의식이나 원망 대신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레아처럼 늦게 찬양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은혜에 먼저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우리 인생에 공평과 은총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그분을 우선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