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창세기 30장
꿈보다 해몽으로 살아가는 신앙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답답하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별것 아닌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앞으로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여 문제를 일으켰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고난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당한 방법과 과정으로 일하시는데, 부정한 방법과 과정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셨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라헬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야곱의 복잡한 가정사가 펼쳐집니다. 야곱에게는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이 있었고, 그는 라헬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라헬 한 사람을 위해 14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종처럼 일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의 태를 열어주셔서 네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잘못된 동기와 과정,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라헬은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언니를 시기하며 야곱에게 극단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세기 30:1)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며 대답합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세기 30:2)
가정에 냉기가 흐릅니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에게 화를 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큰 틀과 원칙을 정하지 않고 감정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화내는 것을 본 라헬은 방법을 바꿉니다. 자신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했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야곱은 두말없이 수용했습니다.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창세기 30:4-5)
이들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시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어떤 어려움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동기가 옳지 못하고 과정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라헬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세기 30:6)
정말 하나님이 라헬의 억울함을 푸시려고 아들을 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동기와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가지고 평가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내적 동기를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다.
빌하가 둘째 아들을 낳자 라헬은 또 말합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30:8)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이지, 경쟁에서 이기는 전리품이 아닙니다. 라헬은 자녀를 승전보 정도로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레아를 자극했고, 레아도 자기 몸종 실바를 통해 두 자녀를 더 낳았으며, 이어서 다섯째, 여섯째 아들까지 낳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라헬은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창세기 30:22-23)
그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써버렸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녀의 태를 여시고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신 것입니다. 단과 납달리를 낳을 때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과 일하심을 우리 임의로 정하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라헬처럼 동기와 과정이 불순한데도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결과는 우리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관여하십니다. 우리는 선한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동기가 선하고 과정이 올바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경쟁심으로 행한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동기와 과정이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과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우리 마음의 동기와 일하는 과정을 보십니다. 선한 동기와 올바른 과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동기와 과정을 성실하게 세워가며,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