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깨다
창세기 33장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신뢰하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을 내어주고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용카드나 은행 대출 같은 필수적인 제도들도 서로 간의 신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렇게 신뢰가 중요한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사랑하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출 것 없이 모든 것을 내어드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의 신뢰관계는 깊어지고 돈독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의 신뢰와 사랑은 마음과 환경, 상황에 따라 자주 변합니다. 때로는 원망하다가, 때로는 다시 붙잡고 신뢰를 회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약속과 책임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겨 야반도주했고, 하나님은 그 문제에도 개입하여 해결해주셨습니다.
라반이라는 산을 넘자 에서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주셨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짐승을 두 떼로 나누고 예물을 먼저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하시며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끝까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야곱
그럼에도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창세기 33:1-2)
부인 4명과 자녀 11명을 세 단계로 나눕니다. 가장 앞에 두 여종 빌하와 실바, 그들의 자녀 4명을 두고, 가운데 레아와 그녀의 아들 6명, 제일 뒤에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둡니다. 에서가 칼로 치면 여종의 자녀들이 먼저 희생되고, 라헬과 요셉은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가장 앞에 선 빌하와 실바, 그들의 자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같은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 차별받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런 태도가 훗날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팔아버리는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놀랍게도 에서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세기 33:4)
에서는 원래 야곱을 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말씀하실 때부터 이미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야곱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스스로 걱정하고 염려하며 가족을 세 단계로 나누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때마다 말씀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며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성경말씀과 사람들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위로하시는데도, 우리는 말씀은 말씀대로 두고 행동은 따로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한 후 이제 가야 할 곳이 분명했습니다. 집을 떠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저를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와서 벧엘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벧엘로 가지 않습니다. 라반도 해결되고 에서도 해결되자 또 다른 궁리를 합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세기 33:17)
자기를 위해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본모습입니다.
하나님은 20년 동안 품삯이 열 번이나 바뀌는 중에도 야곱을 지키셨고, 라반의 음모에서 건져내셨으며, 에서의 칼날에서도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모든 위험이 해결되자 자기와 가축을 위해서는 열심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비난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 아닙니까?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을 잊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야곱에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예 그 땅에 정착하려 합니다.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창세기 33:19)
땅을 사서 눌러앉으려 하면서 벧엘의 약속은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뻔뻔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3:20)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을까요? 하나님은 끊임없이 신뢰를 보여주시는데 인간은 신뢰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야곱을 위해서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훈련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신뢰에 신뢰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신뢰를 보여주시면, 우리도 그 믿음을 붙잡고 하나님을 위해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와 가축을 위해서는 열심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무관심한 이중적인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켜야 합니다. 위기가 지나가면 약속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 관계 속에서 동행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