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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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자존심을 버리고 은혜의 자리로

창세기 36장

인간의 자존심,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인간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본능보다 자존심을 앞세우며, 이러한 자존심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본능을 훨씬 더 앞세웁니다. 어미와 새끼가 먹이를 두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일은 없습니다. 처절한 생존과 자연의 틈바구니에서 동물들은 항상 본능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자존감을 가지고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기에 오늘날의 인간 문화와 정체성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인간이 자존심을 너무 심하게 지키고 자존감을 과도하게 앞세우다 보면 고집과 독선,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을 때 멈추고 출구 전략을 찾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을 너무 앞세우다가 표를 잃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서도 자존심을 앞세우다가 영적 축복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어이없는 일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속임을 당하고 장자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일산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회개하지 않은 20년, 깊어진 상처와 집착

에서는 이미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이스마엘의 딸을 데려와 아내로 삼았는데, 이미 그에게는 이방인 헷 족속에서 데려온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가 결혼한 모든 여인들은 이방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은 몹시 힘들고 아팠습니다.

그는 부모를 떠나 세일산에 들어가서 20년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동생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곱을 만나 뜨겁게 회포를 풀고 화해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화해할 명분과 시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 야곱과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잘 마쳤습니다.

이제 기회가 왔습니다. 바로 지금이 기회였습니다. 동생과 함께 야곱의 장막에 거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은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자권을 강탈당했다고 여기고 부모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수십 년간 표현했으니,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창세기 36:6)

이 구절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는 '자기'라는 단어입니다. 자기 아내, 자기 자녀, 자기 가축, 자기 재산. 성경은 이렇게 에서가 여전히 자기 것을 주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임을, 여전히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것을 지키려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가 20년 동안 세일산에서 살면서 보낸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고, 장자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20년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어야 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죄,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축복을 가볍게 여긴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이제 제가 하나님 앞에 이 죄를 회개하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돌이킴의 기간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20년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것들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졌습니다. "다시는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내 명분과 장자의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겼는데, 이제는 내 아내, 내 자식, 내 가축, 내 재산, 나의 모든 것들은 내가 분명히 지키리라." 그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주하니라" (창세기 36:7-8)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함을 용납하지 못하였더라"는 것은 하나의 핑계에 불과합니다.

만약 에서가 야곱의 장막에 거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가 야곱의 축복권을 인정하고, 자신이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죄를 회개하고, "야곱의 장막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니 내가 이제는 이곳에서 거하며 내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 안에 거하도록 하겠다"고 결단했더라면, 그의 자손들도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고 번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축복의 자리,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주신 축복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합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그토록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가볍게 여겼지만, 축복받지 못한 것 때문에 20년 동안 세일산에 거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축복하신 야곱의 장막에 거하기는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가 너무나 독선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손까지도 하나님의 축복 안에 거하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죄를 돌아보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자존심이 남아서 축복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 것입니다.

에서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적 결과

그의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나와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할 때,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같은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에돔 족속은 로마와 결탁하여 팔레스타인을 지배합니다. 그들 중에서 헤롯이 나왔습니다. 헤롯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살 이하의 영아를 살해했습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조상 에서와 똑같이 자신이 잡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무고한 아이들을 살해한 것입니다. 헤롯의 아들은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헤롯은 바로 이런 자였고, 그의 조상은 에서였습니다. 에서가 믿음의 자리, 축복의 자리, 은혜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대가와 그 결과는 후손들이 에돔 족속이 되어 이런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우리의 자존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무너지고 엎드려 회개해야 합니다. 자존심을 세우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값지고 놀라운 은혜는 우리의 자존심으로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회개하지 않으면 축복의 자리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됩니다. 에서처럼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은혜와 긍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선택은 자손들의 영적 운명까지 좌우합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이에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까지도 영적인 자리를 이탈하고 축복의 자리에서 떠나 그들의 영혼이 병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로지 엎드려 자복하는 것만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도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의 장막에 거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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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버리고 은혜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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