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가 낳은 비극
창세기 37장
차별이 만드는 분노의 씨앗
사회가 발전하고 부유해질수록 복지 혜택은 확대됩니다. 소외된 계층에게 국가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까지 복지 혜택을 요구하는 현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복지에서 소외되는 순간 분노를 표출합니다.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왜 나를 차별하느냐"며 항의합니다. 결국 소신을 밝혔던 정치인들조차 여론에 밀려 입장을 바꾸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빈부와 학력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차별받는다는 감정에 깊은 상처와 분노를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 가정에서도 바로 이 차별이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야곱의 편애가 부른 가정의 파국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야곱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라헬이었습니다. 4명의 아내 중에 라헬을 특별히 사랑했고, 라헬 한 여인을 위해 14년간 종처럼 일할 정도로 그녀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에게 태의 문을 늦게 열어주셨습니다. 여종 빌하와 실바에게는 각각 2명의 아들을, 레아에게는 6명의 아들을 주셨지만, 라헬에게는 요셉 하나만 주셨고,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야곱은 남겨진 두 아들 중 특별히 요셉을 유독 아꼈습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세기 37:3)
채색옷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두 가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노동 면제의 특권이었습니다. 채색옷은 좋은 옷이고 길게 늘어지는 옷이기 때문에 "너는 형들처럼 목축하지 않아도 좋다, 너는 형들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좋다"는 아버지의 공식적 선언이었습니다.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노동 면제를 받는 동안, 그 위의 열 명의 형들은 목축하고 농사짓고 일해야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형들의 죄라고는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레아이거나 빌하, 실바인 것 외에는 아무 죄가 없었는데도, 어머니가 라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셉은 이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둘째는 장자권 계승의 약속이었습니다. 채색옷을 지어 입혀서 "앞으로 내가 죽으면 이 모든 재산과 축복을 너에게 물려주겠다"는 아버지의 확언이자 약속이었습니다. 이제 17살밖에 되지 않은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은 장자권을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장자는 르우벤인데, 르우벤이 이 동생 요셉을 보는 감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차별받는 르우벤은 어머니가 레아인 것 이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야곱은 르우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세기 37:2)
사랑받으며 자란 요셉은 천진했지만 무모했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고, 자신이 꾼 꿈 - 부모와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 - 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평소라면 철없는 동생의 말로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미 형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에서를 만날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야곱은 가족을 세 줄로 세웠습니다. 맨 앞에 여종들과 그 자녀들, 중간에 레아와 그 아들들, 맨 뒤에 라헬과 요셉. 혹시 에서가 공격하면 라헬과 요셉만은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차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섰던 다른 자녀들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이제 채색옷과 장자권 계승 선언으로 형제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창세기 37:18)
형제들은 요셉을 제거하기로 모의합니다. 차마 아버지를 죽일 수는 없으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요셉을 없애버려서 눈에 보기 싫은 가시도 제거하고 장자권의 계승도 막으며, 아버지가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내적 위안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양심이 남아 있어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창세기 37:26-27)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세기 37:28)
유다가 주도해서 동생을 팔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은 20에 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동생을 죽이겠다고 결의하고 팔아치운 형들에게 일차적인 잘못과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형제들의 마음에 분노의 씨앗을 심은 사람은 아버지 야곱입니다. 야곱의 노골적인 편애가 가정에 이런 비극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철저히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신분과 인종, 빈부와 학력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동일한 구원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이 공평한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둘째,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와 축복은 보지 못한 채, 남이 가진 것만 부러워하며 불평합니다.
셋째, 우리도 공평을 실천해야 합니다. 야곱처럼 노골적인 편애로 사람들 마음에 상처와 분노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 삶에 뿌리내려, 만나는 모든 이를 같은 사랑으로 대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