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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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38장

의도와 진정성이 만드는 차이

똑같은 행위라 하더라도 그 의도와 목적, 그리고 진정성에 따라 판단하는 근거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집니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 7명을 먹이기 위해 빵 몇 조각을 훔쳤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19년형을 선고했고, 그는 꼼짝없이 감옥에서 19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도둑질은 명백한 죄입니다. 그러나 정상참작 없이 19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했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충분히 그의 목적과 의도, 진정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정상참작을 해줄 수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형법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형법에서도 의도성은 중요합니다. 의도가 없었다면 과실로 인정되어 형이 가벼워집니다. 반면 죄에 대한 의도성이 인정된다면 가중처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형법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만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 행위와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도와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사람들은 드러난 결과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의도로 일을 행했는지 마음과 생각 중심을 보시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주십니다.

유다 가문의 비극과 다말의 결단

오늘 본문에서 다말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이 바로 이러합니다. 유다는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은 네 번째 아들입니다. 장성한 유다는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면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세 명의 아들 - 엘, 오난, 셀라를 낳았습니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창세기 38:6)

유다는 이방 지역의 한 여인 다말을 장자 엘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해 일찍 죽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더 이상 살려두지 못할 정도의 큰 죄였습니다.

문제는 엘과 다말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관습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의하면, 결혼한 큰형이 자녀 없이 죽으면 둘째가 형수를 취해 자녀를 낳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때 낳은 아들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죽은 형의 아들로 인정받습니다. 그 자녀가 성장하면 동생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형수와 그 아이가 먹고 살도록 떼어주어야 합니다. 동생 입장에서는 죽은 형을 애도하고 살아 있는 형수를 돌보는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혼자 남은 여성을 보호하고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이런 제도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 오난이 형의 대를 잇기 위해 형수를 취했지만, 자녀를 낳아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자 하나님은 오난도 악하게 여겨 그를 치셔서 데려가셨습니다. 이제 막내 셀라만 남았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셀라를 다말에게 주어 자녀를 낳도록 해야 했지만, 유다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며느리 다말이 불길한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의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창세기 38:11)

셀라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유다는 절대로 셀라를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셀라를 줄 생각이 없었다면 다말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했는데,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가 있어라" - 친정으로 소박맞아 쫓겨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에게는 죽은 남편의 아들을 낳아줄 기회가 없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결단을 내립니다.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창세기 38:15-16)

시아버지가 정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시아버지가 다니는 길에서 기다렸습니다. 유다는 그녀가 창녀인 줄 알고 하룻밤 관계를 맺으려 했습니다.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창세기 38:18)

인륜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말은 의도적으로 시아버지에게 접근했고, 시아버지는 담보물을 주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냈으며, 그녀는 임신하게 됩니다.

석 달 후,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시아버지 유다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창세기 38:24-25)

유다는 자신이 맡긴 담보물을 며느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이때 유다가 한 말이 주목할 만합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창세기 38:26)

하나님의 인정과 우리의 교훈

유다가 왜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자신의 행위는 한순간 정욕을 채우기 위해 하룻밤 보낼 창녀를 돈 주고 산 것입니다. 하지만 다말의 의도는 달랐습니다. 다말은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믿음의 가정에 시집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임을 깨달았고,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시아버지 유다도 며느리의 의도를 알아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행위가 옳은 것인가? 이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의문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지워주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 여인의 이름을 기록해 두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의 의도와 진정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드러난 행위로만 그녀를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의 속 깊은 마음과 진정성이 진실로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참된 복된 길임을 깨달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 여인의 이름을 기록하심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 시절에 다말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했겠습니까? 시아버지 유다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인정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며느리 다말을 욕하고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다말이 쌍둥이를 낳아 기르면서 숨을 거둘 때까지 사람들의 눈빛과 손가락질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감찰하시니, 우리는 마음 중심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가짐입니다. 우리의 의도와 출발점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니, 큰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중심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마음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우리는 드러난 행동만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드러난 것으로만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고, 만나는 사람들을 사려 깊은 마음으로 대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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