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더 성실하게
창세기 39장
무한경쟁 시대의 영적 전쟁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짝을 이루어 가는 제도로 장점이 참 많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사유재산도 인정받고 개인의 창의성도 인정받습니다. 그 안에서 자율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는 폐쇄적입니다. 사유재산은 물론 인정하지 않으며,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와 공간이 없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인류는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쟁체제를 통해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한지 이미 입증했습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자본주의가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도 허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자율경쟁이 지나쳐서 무한경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무한경쟁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개인 대 개인, 기업 대 기업, 국가 대 국가. 이제는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되고, 그다음은 살아갈 방법이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여전히 오늘 우리도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우리 자녀들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경쟁하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한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경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사탄과 함께 겨루는 경쟁의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실해야 하는 만큼 사탄은 그보다 더 성실합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사탄은 집요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달려듭니다.
요셉의 시련과 승리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창세기 39:1)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은 20에 팔려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사실 요셉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화가 나고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었던 형제들에 의해서 팔려갑니다. 17세 소년이 형제들의 손에 팔려서 멀고 먼 이집트로 내려가는 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집트 인력시장에서 사람들이 와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뒤져보다가 어느 한 사람의 손에 팔려서 이집트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일이 왜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지금 일어나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또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자신의 인생을 내려놓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 성실함에 하나님은 기름 부어 주셨고 결국 인정받게 됩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세기 39:4)
보디발은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왕 바로의 친위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종들 중에 최고의 자리인 가정 총무가 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팔려온 17세 소년 요셉이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해서 종들 중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충실하게 일했으며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손이 부르트게 일하지 않아도, 조금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본 사탄도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세기 39:7)
이런 유혹은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피 끓는 청춘이기 때문입니다. 피 끓는 청춘인 요셉에게 이런 유혹이 찾아오면 그 순간 정욕을 억제하지 못해서 무너지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또한 요셉은 지금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노예인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하는데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좀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이런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녀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8-9)
그의 말은 위대한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그는 주인을 배신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두 가지 이유로 보디발 아내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을 보면 그가 노예로 팔려왔지만 이집트에서도 지속적으로 깨어서 성실하게 믿음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믿음 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겁내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압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바로 서 있는 사람,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믿음 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좌우 양옆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빈틈이 없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을 요셉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이 무너지면, 그 성실함이 무너지면,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함부로 합니다. 믿음생활은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을 말합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반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요셉의 거절에도 사탄은 물러나지 않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창세기 39:10)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날마다'입니다. 사탄은 날마다 요셉을 유혹합니다. 한 번 거절했다고 물러나면 그건 사탄이 아닙니다. 사탄은 한 번 거절당해도 또다시 도전하고 또다시 도전합니다. 요셉이 성실해서 보디발의 집에 가정 총무가 된 것 이상으로, 요셉이 성실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듯한 사람이 된 것 이상으로, 사탄도 날마다 요셉을 유혹합니다. 이런 유혹은 사탄의 성실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해가면서 매일같이 영적 상태가 좋기가 어렵습니다. 영적 상태가 좋을 때는 사탄의 어떤 유혹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으나, 영적 상태가 바닥을 칠 때는 날마다 유혹하는 사탄의 유혹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99일을 성실하게 잘 버텼는데 단 하루 무너지면 지금까지 99일을 버틴 것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탄의 성실함을 뛰어넘는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날마다 유혹하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믿음 생활을 하면서 빈틈없이 사탄과 경쟁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창세기 39:10)
요셉은 더 성실했습니다. 사탄이 성실한 것보다 더 뛰어나게 성실해서 날마다 유혹하는 사탄의 유혹을 떨치고 이겨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전쟁은 성실함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날마다 성실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한 번 거절당했다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해질 때를 노려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성실함을 뛰어넘는 성실함으로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모두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고,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는 두 가지 이유로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바른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먹고살기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려 성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영원히 살기 위해 믿음에서 성실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사탄보다 더 성실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