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도 섬기다
창세기 40장
상황을 초월하는 섬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여가를 즐기고, 배가 부르면 배고픈 사람을 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이 없고 배가 고픈데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나 상황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건강하고 물질이 있는 사람이 타인을 섬기고 돌아보는 일이 훨씬 더 많지 않겠습니까? 배가 고프고 건강하지 못하며 물질이 쪼들리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가끔 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돌봄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요셉은 사실 감옥에 갇힐 일을 범한 적이 없습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와서 그곳에서 열심히 충실하게 주인을 모셨습니다. 그 성실함을 인정받아 보디발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청했지만, 요셉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으며 나를 믿어준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신실하게 대하는 믿음의 사람의 자세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집요했습니다. 단 한 번의 거절로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동침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요셉은 오히려 더 굳건해지고 신앙을 강하게 지켜서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오히려 요셉을 모함했고,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듣고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나는 형들에게 잘못한 적이 없는데 이집트에 팔려와 노예가 되었다. 노예로서도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않고 충실하게 일했을 뿐인데, 어떤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을 뿐인데, 그런데 내게 찾아온 것은 다시 감옥의 죄수가 되는 것이었다." 노예로서의 삶도 버거운데 다시 죄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감옥에서 만난 두 관원장
그가 갇혀 있는 감옥에 고위 공직자 두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창세기 40:1-3)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은 왕의 최측근 고위 공직자였습니다. 고대 왕들은 항상 독살의 위협을 안고 살았습니다. 왕을 독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음식에 독을 타는 일이었기에, 왕은 술과 떡을 만드는 사람으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등용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이들을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의심스러운 일을 해도 감옥에 가두는 일을 반복했지만, 왕의 의심이 사라지면 곧 복권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요셉과 한 감옥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워낙 고위 공직자인지라 보디발도 두 사람의 처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함에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창세기 40:4)
사실 지금 요셉이 누군가를 돌볼 입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 코가 석 자이고 자신의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데, 아무리 보디발이 명령한다 하더라도 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찌 진심일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요셉의 입장이라면, 어쩔 수 없이 시중드는 흉내는 내겠지만 과연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이 두 사람을 보살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이들을 돌본 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이 성경에 드러납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세기 40:6-8)
행동으로 몸으로 수종드는 일은 마음을 다하지 않아도 시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침에 들어가 보니 그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자리가 사나웠고 꿈을 해석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의 낯빛이 이전과 달랐고, 요셉이 이것을 단번에 파악했습니다.
전심으로 돌보지 않으면 타인의 얼굴빛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요셉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도 이 두 사람의 얼굴빛이 바뀐 것, 어제와 오늘의 낯빛이 변한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돌봄이 요셉을 이 자리에서 건져내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요셉은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요셉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 본문이 보여줍니다. 그들이 꿈을 이야기하자 "나에게 말해보십시오.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만약 요셉이 자신을 다시 감옥에 넣은 하나님께 불평했다면, 인생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으신 하나님께 실망했다면,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진정으로 감옥에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했고,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을 보살필 수 있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훈련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발걸음에 결코 우연이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를 감옥에 넣어서 이들을 돌보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이 감옥에서 요셉이 빠져나온 후에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총리는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많은 백성을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돌보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떤 상황에서도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인지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살펴보고 시험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멋지게 통과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총리가 되면 얼마나 많은 유혹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한 번뿐만 아니라 날마다 동침하기를 요구하는 그녀의 유혹을 멋지게 떨쳐내고 극복했습니다. 총리가 되면 억울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형들에게 팔린 억울한 일도,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간 억울한 일도 불평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 앞에 주어진 일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주변 사람을 돌아보는 일을 매일매일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노예의 삶을 살 때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보디발에 대한 의리와 신뢰를 지키려고 했던 그가, 감옥에 들어와서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며 동시에 두 사람을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을 철저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이제는 하나님이 때가 되매 높이시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봉사가 참된 믿음입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의 얼굴빛 변화를 알아차릴 정도로 마음을 다해 보살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돌봄을 멈추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감옥은 요셉에게 고통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총리가 되기 위한 훈련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셋째, 불평하지 않는 신앙이 승리의 열쇠입니다. 요셉은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고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불평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실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십니다. 매일 신실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키면,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곳에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