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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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험악한 세월

창세기 47장

선택의 갈림길에서 잃어버린 시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고생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귀한 지침이 되고 약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항상 선택의 연속입니다. 두 갈래 길이 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욕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욕망의 길은 넓어 보이고 화려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선택해서 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길이기에 여러 환란과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반드시 훈련시켜서 당신의 동역자로 삼겠다고 작정하시면, 그때부터 큰 고난의 길이 시작됩니다. 많은 시간 훈련받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잃어버린 세월은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 됩니다.

반면 좁은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면, 그 시간은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며 아름답게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시간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하나님의 동역자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인생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이 "나는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서 훈련을 많이 받았다는 회한, "여러분은 나처럼 살지 마십시오"라는 간절한 당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자의 정체성을 깨달은 야곱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된 아들이 아버지와 모든 가족을 초대한 것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며 여쭈었습니다. "정말 내가 내려가도 괜찮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할 테니 내려가라" 말씀하신 후에야 비로소 이집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이제는 포기했던 아들을 22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큰 기쁨과 감사 속에 재회한 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인사시킵니다. 바로 입장에서 요셉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온 이집트 백성을 구원한 요셉의 아버지를 선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창세기 47:7)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했다는 것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는 당시 최강대국 이집트의 황제였고, 야곱은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온 늙은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목축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바로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을 구걸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을 향하여 축복하는 자들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계승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복을 나누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을 사모했지만, 그것을 자신의 치부를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복을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정체성이 복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주고 축복하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 여쭙고 기도했던 것처럼, 이제는 바로 앞에서도 당당하게 믿는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타인을 축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험악한 세월의 고백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47:8-9)

야곱이 말하는 "험악한 세월"에는 여러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이 험악한 세월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야곱이 자초한 것일까요? 두 가지 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근본 원인 제공은 야곱이 한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 담담히 기도하며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았고, 그 때문에 밧단아람으로 도주해야 했습니다. 결혼 문제를 앞두고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20년 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에서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오랜 세월을 숨죽여 보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숙곳에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고, 그 때문에 디나 사건을 만났습니다. 아들들을 차별하고 요셉만 편애했을 때, 요셉이 팔려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로 인한 험악한 세월이 수십 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는 하나님께 훈련만 받다가 나이가 130세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자초한 세월이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시내산에서 성막과 율법을 주고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바네아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그 땅을 악평하고,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하며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정탐한 40일을 40년으로 쳐서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처음부터 험악한 세월을 주실 생각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야곱에게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험악한 세월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 우리가 자초한 일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결론

야곱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복을 받은 자는 복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사모하고 축복의 계승자가 되었지만, 한 번도 복을 나누지 않다가 인생 말년에 이르러서야 타인을 축복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으로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빌면 그들의 인생이 복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둘째,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짧은 인생에서 훈련의 기간을 단축시키고,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기쁘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험악한 세월을 자초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야곱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하나님과 아름다운 시간들을 이 땅에서 보내어, 나중에 천국에서 하나님을 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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