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창세기 48장
뒤바뀐 서열, 당황스러운 축복
형이 동생보다 잘나서 성공하고 출세하면 그 집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형보다 잘나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출세하면 집안에는 묘한 기운이 감돕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부서에서 입사 순서대로 승진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후배가 선배를 앞질러 승진하면 그 부서에는 묘한 기운이 감돕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이 더 복을 받고 성공해야 할 것 같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고 하나님의 선택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뛰쳐나갈 것인가, 이것만이 문제로 남습니다.
야곱은 아들의 초대를 받고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와 17년 동안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고백대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이었지만, 일생에서 이렇게 17년 동안 행복하고 편안하게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그의 말년은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가 임박했습니다.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께 나아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하는 축복의 계승자였습니다. 그 축복의 계승자인 아버지 야곱에게 아들들이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엇갈린 손, 하나님의 뜻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창세기 48:12-13)
요셉에게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17세에 이집트에 팔려와서 30세에 총리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로 살았습니다. 그 훈련과 고통의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이 그를 높이셔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결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 낳은 큰아들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으로, "이제 내가 지금까지 당한 고통과 수고와 눈물과 땀을 다 잊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은 '창성함'이라는 뜻으로, "이제는 내가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창성하리로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특별히 큰아들 므낫세에게 애정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큰아들이 아버지의 축복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버지의 오른손이 므낫세를 향하고 왼손이 에브라임을 향하도록 두 아들을 앉혔습니다.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창세기 48:14)
요셉은 당황했습니다. 당황한 것은 요셉만이 아닙니다. 기도받기 위해 나온 므낫세와 에브라임도 모두 당황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보이지 않아서 혹시 실수하거나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 요셉은 아버지께 바르게 바꾸고자 했습니다.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창세기 48:17-18)
이는 야곱이 축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축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계보는 장자권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고 축복권을 가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야곱이 축복하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은 야곱을 도구로 사용하실 뿐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는 장면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창세기 48:19-20)
주권적 선택 앞에서의 두 가지 태도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요셉이 볼 때는 당연히 므낫세가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사의 순리처럼 보였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고생하고 하나님께서 그 고생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낳게 하신 첫 번째 아들이었기에, 요셉은 므낫세에게 훨씬 더 많은 애정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수고하는 것 같고, 믿음도 봉사도 헌신도 충성도 못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들어 더 크게 사용하시고 복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먼저 앞세우셨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므낫세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에브라임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비유했습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그릇을 빚으실 때, 어떤 그릇은 귀한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한 용도의 그릇으로 빚을 권한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자가 되시고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나무그릇이냐 질그릇이냐가 아니라, 주인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으로 우리를 비워가고 있는가입니다.
둘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태도입니다. 므낫세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은 이 자리에서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형보다 앞섰다고 교만하지 않는 에브라임, 동생보다 뒤처졌다고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는 므낫세. 결국 이들은 시간이 지난 후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받을 때, 므낫세도 한 지파로, 에브라임도 한 지파로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게 되는 두 족속이 되었습니다.
반면 에서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택하시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자를 버린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더 크게 쓰시겠다는 선택이지,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하겠다는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떨어진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라고 질문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는 깨끗한 그릇이 되도록 자신을 비워가야 합니다. 어떤 그릇이든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쓰이는 귀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므낫세처럼 겸손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부복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에브라임처럼 교만하지 않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교만하지 않고, 형보다 앞섰다고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므낫세의 선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 아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축복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