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의 비결
창세기 49장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되려면
사람들과 교제하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여러 부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의 좋은 인상이 끝까지 이어지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호감이었는데 갈수록 비호감이 되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갈수록 좋은 사람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인격일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성도입니까, 아니면 갈수록 좋아지는 성도일까요?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갈수록 좋아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가 바로 갈수록 좋아지고 갈수록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고백대로 험악한 세월을 130년 살았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도하지 않았던 그의 130년은 훈련으로 점철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보낸 마지막 17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평안한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날이 가까워진 야곱은 자녀들을 모두 불러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름은 축복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직설적인 말씀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야곱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입을 통해 자녀들의 삶을 조망하게 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경고의 말씀을 함께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르우벤의 실패와 유다의 역전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세기 49:3-4)
르우벤은 야곱의 첫 아들로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누구나 첫 아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아들로서의 사명과 자릿값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물의 끓음같이 자신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해서, 야곱의 아내였던 빌하와 동침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주시는 말씀은 앞으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평생 회개하며 살고 정욕을 하나님 말씀 앞에 묻어놓고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혈통적으로 야곱의 대를 이어 장자의 몫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었던 르우벤은,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발로 차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혈기와 정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받아야 할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 유다는 레아가 낳은 네 번째 아들로, 아버지 야곱에게는 별볼일 없는 존재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를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세기 49:8)
형제의 찬송이 되고 형제들이 그 앞에 절하게 된다는 축복이었습니다. 절을 받는 것은 원래 요셉의 꿈이었는데, 그 꿈이 유다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 유다의 인생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족을 떠나 이방 여인과 결혼했고, 며느리도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이 자식 없이 죽자 셋째 아들을 며느리 다말에게 주기 싫어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낸,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정욕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룻밤 육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고 여인을 샀는데, 그 여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였습니다. 평생 동안 "며느리를 통해서 자녀를 낳은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동생을 구하려 했습니다.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담보물이 되겠다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베냐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요셉 앞에서도 기꺼이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잡혀 있을 테니 제발 이 아이를 풀어주십시오. 제 아버지가 이 아이를 보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 한 번의 희생과 결단이 인생 역전을 일구어냈습니다. 평생 비루하게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의 인생은 그 한 번의 희생으로 충분했습니다. 가족들을 구원했고 하나님의 마음도 되돌렸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세기 49:10)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정의와 공의와 성실로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받은 축복대로 살아야 합니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큰 축복을 받았지만 정욕을 절제하지 못해 그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여러 축복들을 가지고 그 축복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 희생과 헌신이 인생을 역전시킵니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희생하고 헌신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셋째, 처음보다 나중이 더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한 요셉이 아니라, 존재감 없었던 유다를 통해 다윗이 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갈수록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희생하고 헌신하며 십자가를 지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처음보다 끝이 더 복되고, 갈수록 더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