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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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모든 영광 하나님께

창세기 50장

가로채서는 안 될 영광

직장인들에게 가장 얄미운 사람은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직장 상사라는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표절 같은 행위,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합니다. 원작자의 피와 땀을 아무런 노력 없이 가로채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법으로 금하고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일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마땅히 당신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들에게 진노하십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주의 사자가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방인 헤롯 아그립바 1세조차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하셨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이 바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심판도 하나님의 권역이며 은혜를 베푸는 것도 하나님의 일임을 고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요셉의 초대를 받아 이집트로 내려왔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말년 17년의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들과 함께 일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내고, 147세가 되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로는 거의 국상에 버금갈 정도로 그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창세기 50:3)

칠십 일 동안 애도 기간이 지난 후, 야곱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 조상들의 유골이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기 위해 요셉과 형제들이 아버지의 유해를 메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창세기 50:13-14)

죄책감에 사로잡힌 형제들과 요셉의 위대한 고백

아버지 장례가 끝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형제들이 불안해했습니다. 베냐민을 제외한 요셉의 형제들 모두가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우리에게 앙갚음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 면목 때문에 17년 동안 잘 지냈지만, 이제 아버지도 없으니 울타리가 사라졌다고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세기 50:15)

이 모습을 통해 죄책감과 죄의식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미 17년 전에 요셉은 이 문제를 다 용서했습니다. 유다의 헌신과 희생을 보고 모든 형제들을 용서하고 끌어안고 울며 화해했습니다. 그런데도 형제들은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도 용서했고 하나님도 더 이상 이 문제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구도 책망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과거의 굴레에 매여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죄의 굴레에 빠져 두려워하며 심판당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 아래 사로잡힌 순간, 우리의 과거를 "죄 없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기억조차 하지 않겠다" 말씀하시고 "내가 너의 모든 과거를 다 흘려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세례받는 행위는 흐르는 강물에 우리의 모든 과거와 옛 기억들을 떠나보낸다는 의미입니다. 물속에 나의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예수님께서 받아주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지은 죄에 발목 잡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죄의식과 죄책감을 공략하여 어깨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요셉은 이런 형제들을 보고 심히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세기 50:19)

이 고백은 대단히 위대한 고백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면 권력의 양면성을 이용합니다. 권력자는 심판도 할 수 있고 은혜도 베풀 수 있습니다. 형제들은 그것 때문에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도 구원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20-21)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비록 힘이 있다 할지라도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이 있어서 남을 도울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타인을 돕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악한 일을 범하게 됩니다.

요셉은 이때의 고백이 세월이 오래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가 가까워졌을 때도 형제들에게 똑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세기 50:24)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당신들을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여 주시고,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길러주셨던 것처럼, 내가 죽어도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실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요셉은 진심으로 자신이 형제들을 돌보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셨고, 그들을 용서하셨다고 진심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볼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힘과 물질과 능력이 있다 해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죄책감과 죄의식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새롭다 함을 입었으니, 과거의 죄책감에 매이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심판과 은혜는 하나님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는 겸손한 고백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를,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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