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성경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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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혜와 사명의 동행

창세기 7장

지혜로운 사랑의 방법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당연히 부모이기 때문에 자녀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주지는 않습니다. 방향을 잡아주고 큰 틀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녀들이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스스로 일을 하고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원리와 방법을 깨우치도록 뒤에서 도와줍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부모는 자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도록 자녀를 위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줍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리석은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와 방법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생력과 동력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생겨나지 않습니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자녀는 이 힘들고 험하고 악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뒤에서 지켜보고 안타깝지만 응원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말씀하셨고, 이 사람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는데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동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틀을 정해 놓으시고 인간이 할 수 있도록 방향과 방법을 깨닫게 하시고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인간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들이 모든 것을 다 하도록 갖추어 두셨지만 일하도록 해주셨습니다.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에덴동산을 경작하여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러나 광야길을 걷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막 한가운데를 40년 동안 걸어가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의지해서 가나안 땅까지 나아가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할 일을 알려주시고 일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의 사명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등장합니다. 노아는 그 당시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예배 공동체가 다 무너지고 파괴되었지만 노아는 예배의 자리를 홀로 그 가족과 함께 굳게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의인이라 하시고 그에게 모든 비밀을 다 깨닫게 하시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노아에게 사명도 함께 주십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라고 하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은혜는 하늘로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고 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함께 짝을 이루는 것은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고 동시에 방주를 짓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120년 방주 건축의 의미

하나님이 정말 노아를 사랑하셨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방주 만드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셨으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 짓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하셨다면 하룻밤 사이에 뚝딱 방주를 만드시고 "너와 너의 가족은 이 방주로 들어가라. 그러면 안전할 것이다" 하시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이 명령을 다 준행합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22)

노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120년 동안 방주 만드는 사명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준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아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노아에게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짓게 하셨을까요?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노아도 깨닫고 함께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만드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악한 일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바라고 계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면 120년 동안 방주 짓는 것은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었다면 120년 동안 지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기간 동안은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인류를 사랑하심을 표현하는 기간이었고 돌이키기를 원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이 120년 동안 방주의 사명을 주신 이유는 노아가 방주를 지으므로 죄짓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방주 짓는 것은 고되고 힘든 여정입니다.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죄지을 여력이 없습니다. 세상의 악한 일에 빠져들 시간이 없습니다. 열심히 사명 감당하면 어떻게 그 기간 동안 죄를 짓겠습니까?

마지막 7일의 긴급한 사명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 7:4)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7:5)

6장 22절에도 "다 준행하였더라"하는 말씀이 나오고 오늘 읽은 7장 5절에도 "다 준행하였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을까요? 6장 22절에 나오는 "다 준행하였더라"하는 말씀은 120년 동안 방주 명령을 다 준행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7장 5절에 나오는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씀은 방주 만드는 명령을 다 준행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120년 동안 기다렸는데도 방주 안에 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7일을 더 연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쓸어버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7일 동안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미루시는구나, 유예하시는구나. 그러면 7일 동안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단 1시간도 지체하지 말고 열심히 복음 전하고 방주에 타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구나." 그래서 노아는 7일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준행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제 7일 후면 이 세상이 홍수로 심판받고 멸망당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지으신 방주에 타십시오" 그렇게 열심히 외쳤습니다. 이것이 노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행한 일입니다.

결론

첫째, 은혜와 사명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는 반드시 사명이 함께 따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 짓는 사명과 7일 동안 복음 전하는 사명을 다 준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양의 직분과 봉사의 자리, 그리고 일터에서의 사명을 주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둘째, 사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명은 때로 부담스럽고 힘에 겨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실하게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면 죄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과 물질과 지혜를 주신 것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고 사명도 함께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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