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장

성경
출애굽기

기회를 놓치다

출애굽기 11장

실력 너머의 지혜

성공은 실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해도, 그것을 발휘할 무대가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실력을 펼칠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그 뛰어난 능력조차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실력을 넘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시기와 때를 분별하는 통찰력은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지혜로운 사람만이 그것이 붙잡아야 할 순간인지 아니면 흘려보내야 할 때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수많은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자신의 실력만을 과신한 채, 하늘이 주신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쳐버립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구나"라며 가슴을 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재앙이라는 이름의 기회

오늘 본문의 바로에게도 하나님은 열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세상은 이를 열 가지 재앙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바로와 이집트 백성들에게 베푸신 열 번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도, 이집트 백성들도 이 소중한 기회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 아홉 가지 재앙이 연이어 임했지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기습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매번 경고가 선행했고, 예고가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내보내라. 그러면 모든 재앙을 거두리라."

처음에 바로와 신하들은 모세를 광인 취급했습니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앙이 거듭되자 그들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박 재앙이 예고되었을 때, 일부 신하들은 경고를 듣고 가축과 종들을 피신시켜 화를 면했습니다. 모세의 경고에 귀 기울인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달랐습니다. 끝까지 완고했고,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은 그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태양신의 아들을 자처하며 통치해온 바로의 나라에 햇빛이 사라진 것입니다. 삼일 동안 지속된 흑암 속에서 백성들의 신뢰는 산산조각 났고, 신하들마저 왕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권위는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가장 무서운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출애굽기 11:5-7)

장자 재앙의 예고였습니다. 이것은 바로에게 주어진 마지막 경고이자 최후의 기회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이킨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비롯한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 마지막 기회마저 자신의 발로 걷어차버렸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1:10)

영적 무감각의 심판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의지를 조종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죄의 책임이 바로가 아닌 하나님께 돌아가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바로를 그의 완악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마음에는 성령이 거하시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양심이라는 도덕적 나침반이 있습니다.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굳어지고 양심에 화인이 맞으면, 이 분별의 기능이 마비됩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경고를 들어도 마음에 찔림이 없게 됩니다. 바로가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완악한 자들을 그들의 죄악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찔림을 주시는 것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어떤 죄를 지어도, 어떤 경고를 들어도 무감각하다면, 그것은 유기(遺棄)의 심판 - 가장 두려운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이 심판 아래 있었기에 열 번의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말았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적 분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이런 비극적 선택의 연속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는 1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의 쾌락에 빠져 그 모든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기까지 마지막 7일의 유예까지 있었지만, 노아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구원의 방주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멸망을 면할 수 있었지만, 그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롯이 사위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경고했을 때, 그들은 장인의 절박한 호소를 농담으로 치부했습니다. 기회를 알아보지 못한 자들의 최후는 이렇게 비참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재앙은 회개로의 초대였습니다. 열 가지 재앙은 사실 열 번의 자비로운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매번 예고하시고 경고하시며 돌이킬 시간을 주셨습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영적 무감각이 가장 큰 심판입니다.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상태, 성령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심판입니다.

셋째, 분별의 지혜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실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알아보고 붙잡는 영적 통찰력이 진정한 성공으로 인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만남을 통해 기회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실력만을 과신하며 하늘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오늘 주어진 은혜의 시간을 붙잡아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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