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장

성경
출애굽기

여호와의 유월절

출애굽기 12장

역사의 중심축

한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광개토대왕의 대륙 경영을 꼽는 이가 있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드는 이도 있습니다. 근세로 좁혀보면 세종대왕 시대의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불굴의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각자의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중심축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입니다. 성경이 증언하고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온 이 구원의 역사는,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사건입니다. 그들의 모든 역사 인식이 여기서 출발하고 여기로 수렴됩니다.

출애굽은 세 개의 장대한 막으로 구성된 드라마입니다. 제1막은 이집트에서 펼쳐진 열 가지 재앙, 제2막은 광야에서의 40년 순례, 제3막은 가나안 정복 전쟁입니다. 이 웅대한 서사시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는 단연 열 번째 재앙 - 장자들의 죽음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피의 언약

우리는 이를 재앙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홉 번에 걸친 자비의 기회였습니다. 바로는 그 모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모든 장자가 죽을 것이다." 최후의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완악한 마음은 돌과 같았습니다. 그는 끝내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실 때입니다. 죽음의 심판 속에서 생명을 보존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열나흘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애굽기 12:5-7)

흠 없는 어린 양의 피 - 이것이 생사를 가르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문설주와 인방에 발린 붉은 피가 죽음의 사자를 물러가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특별한 식사법을 명하십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애굽기 12:11)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선언을 만납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입니다. 단순히 "유월절"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유월절"도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이 절기를 당신의 이름으로 명명하셨을까요?

유월(逾越)은 '넘어가다', '건너뛰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피 바른 집을 '넘어간' 그 밤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선포하십니다.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서 명확해집니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2-13)

구원의 주권

"여호와의 유월절" - 이 표현은 구원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천명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입니다.

430년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 과정을 돌이켜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이 세운 전략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일으킨 혁명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고,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셨으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단순한 행위 - 그것이 그들이 한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 담고 있는 심오한 진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일방적인 선물입니다. 인간은 그 은혜를 받을 뿐, 스스로 구원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바로를 보십시오. 그는 스스로를 태양신 라(Ra)의 아들이라 칭했습니다. 신적 혈통을 주장하며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도 "나는 신의 아들이니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의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출애굽기 12:29-30)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바로의 장자도 죽었습니다. 왕궁의 화려함도, 신전의 거룩함도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만이 구원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의 메시지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신분, 재산, 권력, 종교적 공로와 무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바로의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물질이 구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권력이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자기 수양과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인본주의적 구원관의 허망함을 반복해서 증명해왔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라는 선언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과 무관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합니다.

둘째, 순종은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는 명령에는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구원을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여호와의 유월절" - 이 위대한 선언 앞에 우리의 모든 교만이 무너지고, 오직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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