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장

성경
출애굽기

홍해의 광야길

출애굽기 13장

지름길을 향한 인간의 갈망

전우치전 같은 고전 환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축지법이라는 도술이 있습니다. 천 리 길을 한 걸음에 주파하는 이 신비한 능력은 특히 중국 문학에서 빈번히 등장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황당무계한 상상력에 매료되었을까요? 이유는 의외로 명확합니다. 중국 대륙의 광대함 때문입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 끝없는 대륙을 도보로 횡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문학 속 축지법을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입니다.

축지법이라는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지름길을 갈망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샛길을 발견했을 때의 은밀한 희열, 시간과 수고를 절약했다는 뿌듯함 -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재산과 인맥을 물려주어 험난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헤쳐나가도록 돕고자 합니다. 최대한 빠른 길로, 최소한의 고통으로 성공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부모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상은 정의와 공정이 무너지고, 온갖 편법과 특권이 횡행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지름길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멀리 우회하게 하시고, 더 깊은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 험난한 여정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세 갈래 길의 선택

하나님은 바로에게 열 번의 기회를 베푸셨으나, 그는 매번 그 은혜의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마침내 장자 죽음의 재앙이 이집트 전역을 강타했습니다. 파라오의 왕자로부터 맷돌 뒤에서 일하는 여종의 아들까지, 외양간의 첫 새끼까지 모든 장자가 한 밤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제서야 바로는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영원히 기념하도록 유월절로 제정하셨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절기의 명칭이 "이스라엘의 유월절"이 아니라 "여호와의 유월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니, 출애굽의 경로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달려 있었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해변길입니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는 이 길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였습니다. 건각의 장정이 하루도 쉬지 않고 걸으면 30일이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고, 푸른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여정이니 경관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둘째는 왕의 대로입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이 공식 도로는 왕의 사신들과 대상들이 이용하는 안전이 보장된 길이었습니다. 군사적 보호와 숙박 시설이 갖춰진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 길을 모두 거부하셨습니다. 본문은 왕의 대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해변길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애굽기 13:17)

블레셋 영토를 관통하는 해변길은 신속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호전적인 블레셋과의 무력 충돌이 불가피했고, 430년간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이 겁에 질려 이집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새" (출애굽기 13:18)

존재하지 않는 길

"홍해의 광야 길" - 이 표현 자체가 모순입니다.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홍해는 바다이고 광야는 사막입니다. 바다에 무슨 길이 있으며, 사막에 어떤 도로가 존재한단 말입니까? 파도가 일렁이는 수면 위에, 바람 따라 모래 언덕이 이동하는 사막에 어떻게 길이 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바로 이 "존재하지 않는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30일이면 충분한 해변길도, 안전이 보장된 왕의 대로도 아닌, 홍해와 광야라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유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대로를 버리고 망망대해와 끝없는 사막으로, 매일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불모의 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바로 이 불가해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추구하신 것은 속도도 안전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의 백성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집트에서 보냈습니다. 그중 대부분을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 깊숙이 노예 근성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30일의 속성 코스로 가나안에 진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리적으로는 가나안에 도착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이집트 노예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이집트의 우상을 섬기고, 파라오를 그리워하며, 이집트 제2중대를 건설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이라는 광야의 용광로에서 그들을 제련하셨습니다. 육체와 영혼에 깊이 스며든 이집트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하시고, 진정한 언약의 백성,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었고, 완벽한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영혼의 성숙을 위한 우회로

오늘 우리 앞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놓여 있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이 길이 명백한 지름길입니다. 성공으로 직행하는 고속도로가 뚜렷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숙고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택한 그 효율적인 길이 과연 나에게 참된 유익을 가져다줄까요? 단기적 이익과 물질적 풍요는 얻을지 몰라도, 영혼의 성장과 영적 성숙이 따라올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바다를 가르시고, 사막에 대로를 내시며, 그 험준한 여정의 모든 순간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면 바다가 육지가 되고, 광야에 샘이 솟아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멀고 험한 길을 걷는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과오로 인한 자업자득의 고난이 아니라,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홍해의 광야 길이라면, 그 여정의 종착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섭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으로는 자녀의 고난을 지켜보기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아래 있는 길이라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자녀들은 정금같이 단련되고 새롭게 빚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가장 빠른 해변길도 아니고, 가장 안전한 왕의 대로도 아닌, 홍해의 광야 길 - 이 역설적인 여정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를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이 험난한 순례길이 얼마나 필수적이었는지, 얼마나 은혜로운 선물이었는지를 눈물로 고백하며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경로는 효율이 아닌 변화를 지향합니다. 최단 거리가 최선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고 때로는 먼 우회로를 택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묵은 습성과 세속적 가치관이 벗겨지고, 참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됩니다.

둘째, 불가능한 곳에 하나님은 길을 내십니다. 홍해에도, 광야에도 인간의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하시면 바다가 갈라지고 사막에 대로가 생깁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셋째, 영적 성숙에는 지름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430년간 체화된 노예 근성을 하루아침에 제거할 수 없듯이, 우리의 영적 변화도 충분한 시간과 과정을 요구합니다. 광야의 세월은 낭비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성화의 여정입니다.

홍해의 광야 길 - 이 험준하지만 은혜로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과 깊은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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