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4장

성경
출애굽기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

출애굽기 14장

삶의 지혜

현대의 젊은 세대는 긴 문장을 한 단어로 압축하는 언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같은 신조어들이 일상에 스며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표현이 '낄끼빠빠'입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는 이 말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비판할 때 쓰기도 하고, 사회생활의 처세술을 담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벼워 보이는 유행어에 놀라운 영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도 정확히 이 원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물러서야 할 때는 겸손히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반대로 행합니까? 침묵해야 할 순간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고, 순종해야 할 때는 뒤로 물러서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원망을 행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오늘 본문에는 바로 이런 어리석음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등장합니다.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초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집요한 추격자

바로에게 임한 열 가지 재앙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만약 바로가 모세의 첫 메시지 -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절기를 지킬 것이다" - 를 받아들였다면, 단 하나의 재앙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을 더욱 가혹하게 압제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장자를 포함한 이집트 전역의 장자들이 한 밤중에 죽음을 맞이한 후에야 무릎을 꿇고 출애굽을 허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급히 이집트를 떠나 광야로 들어섰을 때,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였는지 깨달았습니다. 남자 장정만 60만, 여기에 노인과 여자, 아이들까지 합하면 200만이 넘는 거대한 노동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집트의 모든 대규모 국책 사업이 중단될 위기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노동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즉시 군사 작전을 명령합니다: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출애굽기 14:6-7)

선발된 병거 600대와 이집트의 모든 전차를 총동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전면전 수준의 군사력입니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 430년간 단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런 압도적 무력을 동원한 것은 학살이 아닌 위압을 통한 굴복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어 다시 끌고 오려는 계산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악의 본성이 얼마나 집요한지 목격하게 됩니다. 이집트는 죄악된 세상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죄는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끈질기게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떨쳐내고 일어서도 끝까지 추격해오는 것이 탐욕이고, 정욕이며, 육신의 모든 욕망입니다.

이집트 군대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추격하듯, 우리 내면의 죄악된 본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집요하게 우리를 뒤쫓고 있지 않습니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죄악된 이집트와의 결별을 결단하지 않으면, 죄는 우리가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위협과 유혹으로 다시 죄악의 도성으로 끌고 가려는 악한 세력 -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의지입니다. 돌아갈 생각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온전히 붙들려 죄를 떨쳐내려는 강력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악의 도성을 떠나 나아가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신뢰하며 담대히 전진해야 합니다.

홍해와 추격군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이집트의 대군을 목격했을 때, 그들의 심장은 얼어붙었습니다. 거대한 기병대와 전차 부대가 천둥소리를 내며 돌진해오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출애굽기 14:10-11)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출애굽을 주도한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들의 절망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가 막아서고, 뒤에는 이집트의 정예군이 살기등등하게 추격해옵니다. 독 안에 든 쥐 -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 모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 선언을 선포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13-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이것은 모세가 평생 동안 선포한 모든 말씀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신앙의 정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이 선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출애굽의 전 과정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첫 재앙부터 장자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재앙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주도적으로 행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명명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해변길과 왕의 대로라는 합리적 선택지를 두고 굳이 길도 없는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막다른 상황 역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입니다.

모세의 선언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중한 책망이기도 했습니다. "너희가 나설 때가 아니다. 너희가 원망하고 불평할 자격이 없다. 구원을 위해 너희가 기여한 것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느냐?"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셨으니, 지금도 하나님이 친히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침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앞에는 넘을 수 없는 홍해 같은 장벽이, 뒤에는 바로의 군대 같은 위협이 압박해올 때, 우리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원망입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런 막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까? 왜 앞뒤가 꽉 막힌 이 상황에 저를 가두셨습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게 하시든지, 왜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바로 우리의 원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과 섭리를 모독하는 불신앙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구원의 과정을 친히 주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실 것이고, 마른 땅 같은 길을 내실 것이며, 바로의 군대는 바다에 수장시켜 우리를 완전한 자유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 해야 할 순종은 성실하게 감당하고, 하지 말아야 할 원망과 불평은 입을 굳게 다무는 것 -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경륜으로 우리를 구원의 완성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죄의 추격은 집요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더욱 강력합니다. 이집트 군대처럼 죄는 끈질기게 우리를 추격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자유로 인도하십니다.

둘째, 절망적 상황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무대입니다. 앞은 홍해, 뒤는 추격군 - 인간적으로는 완전한 막다른 길이지만,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장소가 됩니다.

셋째, '가만히 있음'은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 신앙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침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능동적이고 성숙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이 위대한 선언이 오늘 막다른 길에 선 모든 이들에게 불멸의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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