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법칙
출애굽기 15장
끝없는 고비들
인생은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산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우리 앞을 가로막습니다.
고등학생들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인생의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합격의 기쁨을 맛보지만, 곧 더 큰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취업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장벽을 넘기 위해 다시 분투하고, 마침내 취업에 성공했을 때의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막상 직장에 들어가보니 그곳은 또 다른 전쟁터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경쟁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은 흘러가고 또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잡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 넘어가면 또 다른 산이 있고 건너가면 또 다른 강이 있는 이 인생을 '광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인생이 바로 그 광야임을 생생하고 철저하게 보여줍니다.
승리 후의 침묵
"내 백성을 보내라" - 예배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는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열 번의 기회를 주셨지만, 바로는 모두 거절했고, 그 기회들은 재앙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장자 죽음의 재앙을 겪은 후에야 바로는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후 바로는 다시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집트 최정예 군대, 최고의 전차부대와 뛰어난 지휘관들을 보냈습니다.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추격해오는 이집트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죽게 하느냐?"
그때 모세가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길 없는 바다,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같이 바다를 건넜고, 뒤따르던 바로의 군대는 모두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자기 눈으로 목격했지만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 앞에서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애굽기 15:1-2)
모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누이이자 여선지자인 미리암이 모든 여인들과 함께 소고를 잡고 춤추며 화답했습니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여,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애굽기 15:20-21)
엄청난 영적 에너지가 충만했습니다. 눈앞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목격한 그들에게 이제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짜 광야의 시작
그러나 여기서부터 진짜 광야가 시작됩니다.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홍해에는 길을 내셨지만, 이제는 광야입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해서 하늘의 구름이 그들을 태워 가나안까지 운송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생략하고 건너뛸 수 있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그들의 두 발로 직접 걸어서 광야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며, 힘들고 어렵고 고단한 광야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시험이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5:22-23)
이것이 인생의 실상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았는데,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건너와 보니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흘 길을 걸어도 물이 없었습니다.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겨우 물을 찾았는데,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고비를 하나님의 은혜로 넘어가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뻐합니다. "나를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이다" - 자신감에 충만합니다. 그런데 그 고비를 넘고 나면 또 다른 광야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겨우 무언가를 붙잡았는데 그것은 쓴물입니다.
원망과 기도의 갈림길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께 대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애굽기 15:24-25)
백성들은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광야에서 원망은 어떤 답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원망해봐야 하나님은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원망에는 귀도, 마음도, 손도 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부르짖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세의 간구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광야를 살아가는 첫 번째 법칙이었습니다. 이 법칙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원망으로는 어떤 응답도 들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내 인생을 저주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해봐야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답을 얻습니다.
인생의 쓴물이 있다면,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정을 통해 분명한 답을 보여주셨습니다.
엘림의 선물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실 뿐 아니라, 더 큰 선물도 예비하셨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5:27)
이것 또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라의 쓴물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실 뿐 아니라,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도 허락해주십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쉼을 누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엘림 같은 장소, 엘림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광야길이 매일 사막의 황량함뿐이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엘림 같은 안식처를 예비하십니다. 엘림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엘림 같은 은혜의 순간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엘림을 경험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원망이 아닌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은 연속된 광야입니다.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립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실상입니다.
둘째, 원망은 해답이 아니라 함정입니다. 광야에서 원망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소리에는 귀를 닫으시지만, 부르짖는 기도에는 응답하십니다.
셋째, 기도하는 자에게는 엘림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실 뿐 아니라, 물샘과 종려나무가 있는 안식처도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광야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오늘도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원망이 아닌 기도로 나아가,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기적과 엘림의 안식을 경험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