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지혜
출애굽기 18장
불통의 시대
요즘은 소통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선 주자들도 20대, 30대 청년들과 함께 소통하며 그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대선 당락의 절대적인 요소임을 알고 그들과 소통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이 시대적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더 깊이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이전 세대보다 어쩐 일인지 소통이 더 잘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집 전화도 전화 요금 때문에 함부로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었던 시절, 소통의 도구라고는 편지밖에 없었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손편지를 써서 오랫동안 기다려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 시절에는 그래도 소통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습니다.
요즘은 휴대전화 없는 사람이 없고 하루 종일 전화기를 손에서 떼지 않고 있으나,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은 더 심화되고 커져가고 있습니다. 한없이 통화하고 한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소통은 이렇게 되지 않고 오히려 불통의 세대가 된 것일까요?
더 깊이 소통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우린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소통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듣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기중심성이라 할 것 없이 남을 존중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려 했으나, 요즘은 저마다 다 잘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루 종일 전화하고 전화기를 손에 붙들고 놓지 않아도 자기중심적 생각을 가지고 듣는 시늉만 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의미에서 소통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세가 직면한 현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모세는 그런 의미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준비 없이 출애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급하게 출애굽했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에 임할 때까지 바로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은 "우리가 과연 출애굽할 수 있을까?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바로가 우리를 보내주기나 할까?" 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전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항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급하게 출애굽합니다. 엄청난 대군이 출애굽했습니다. 남자 장정만 60만 명, 노인 여자 어린이까지 합치면 거의 200만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출애굽했습니다. 대열을 갖추어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도 전쟁하지 못한, 한 번도 조직적인 생활을 해보지 못한 오합지졸들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분쟁이 많이 있습니다. 갈등하고 분쟁하는데, 문제는 갈등과 분쟁을 조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서로 간에 한 번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을 조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정할 기구도 없습니다. 오로지 그들은 모든 문제를 가지고 모세에게 들고 왔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출애굽기 18:13)
200만 명은 족히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가 일대 200만으로 함께 있는 장면입니다. 이건 우리가 생각해도 거의 불합리한 장면입니다.
이드로의 지혜로운 조언
마침 그 당시 모세를 방문하기 위해서 이 자리를 찾아왔던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장인이 볼 때 사위 모세에게도 할 일이 아니고, 하루 종일 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출애굽기 18:17-18)
모세의 장인은 직설적으로 모세에게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었던 모세의 감정이 어땠을까요? 과연 우리가 모세 입장에서 장인의 이 말을 그대로 듣는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사실 지금의 모세는 과거의 모세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과거의 모세는 도망자 신분으로 장인에게 와서 처가살이하며 장인의 양떼를 치던 모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바로 앞에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용감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지팡이를 잡으면 지팡이가 뱀이 되고, 그 지팡이를 통해서 나일강 물을 피로 물들게 하기도 하고,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한 명실상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이 지도자가 이방인 노인 이드로에게 이 말을 들으면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전혀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출애굽기 18:20-22)
이드로는 두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첫째는 율례와 법도를 세워서 백성이 스스로 그 법 안에서 행동하고 생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중간관리자를 세워서 그들이 작은 일은 재판하게 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라는 조언입니다.
모세의 겸손한 수용
이 조언을 받은 모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출애굽기 18:24-25)
모세는 장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했습니다. 모세가 쉬운 사람이라서, 아니면 귀가 얇은 사람이라서 장인의 말을 그대로 수용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에게도 유익하고 공동체에게도 유익합니다. 하루 종일 재판하느라 80 넘은 노인 모세도 피곤하고, 동시에 하루 종일 줄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모세는 장인의 조언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공감과 소통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 철저하게 자기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말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습니다. 꼬일 대로 꼬이고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으면 자신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절대로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곰곰이 듣고 생각해보면 어떤 말이 공동체에 더 유익인가, 어떤 말이 우리 가정의, 일터의, 교회의 유익인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함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답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감정을 중요하게 앞세우고 자기 체면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절대로 소통과 공감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탁월한 소통의 능력자였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진정한 소통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자기 감정이나 체면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지혜로운 조언은 누구에게서든 올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방인 장인의 조언도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언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 조언의 내용입니다.
셋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결정이 결국 자신에게도 유익합니다. 모세가 권한을 나누어 준 것은 공동체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유익한 결정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말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나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와 하나님 입장에서 그분들의 말을 한 번 더 곱씹고 되새겨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