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계명
출애굽기 20장
새로운 신분, 새로운 삶
군 복무를 시작하는 신병들은 집중적인 교육 과정을 거칩니다. 이 교육은 크게 직무교육과 생활교육으로 나뉩니다. 직무교육은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고, 생활교육은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원활하게 생활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내무 생활의 규칙부터 상하 관계의 예절, 부대의 역사와 전통까지, 암기하고 체득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기업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회사의 비전과 역사를 배우고, 직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며,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조직이든 새 구성원이 합류하면, 그가 온전히 그 조직의 일원이 되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그 조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전, 시내산 기슭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차근차근 가르치셨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형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애굽과 가나안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였습니다. 애굽은 바로의 절대 권력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430년간 노예로 살았습니다. 우상 숭배가 일상이었고, 인간의 존엄은 짓밟혔습니다. 반면 그들이 향하는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이 다스리는 곳이었습니다.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 전체를 바꾸는 대전환이 필요했습니다.
해방 선언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며, 먼저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체성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0:1-2)
이 선언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너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대를 이어 노예로 살았지만, 이제 그들은 자유인이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은 외적 환경의 변화만큼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육체는 애굽을 떠났지만, 영혼에는 여전히 노예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들은 것이 모두 노예의 삶이었기에, 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여전히 종의 근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익숙했던 우상 숭배의 습관, 자기 보존에만 급급했던 이기적 삶의 방식이 그들의 핏줄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인내하시고, 또 인내하시며 그들을 이해하셨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때로는 엄하게 훈련시키시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가셨습니다.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해도 즉각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침묵하시고, 때로는 위로하시며, 때로는 책망하시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이끌어가셨습니다.
사랑의 이중 구조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새겨졌습니다. 첫 번째 돌판(1-4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두 번째 돌판(5-10계명)은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하나님은 단호하게 우상 숭배를 금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온갖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형상 없는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참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늘의 것이든 땅의 것이든 물속의 것이든, 그 어떤 형상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두 번째 돌판은 이웃 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제시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애굽기 20:13-17)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런 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를 공경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타인의 생명과 명예와 소유를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사라진 자기 사랑
십계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돌판에도, 두 번째 돌판에도 '자기 사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 있을 뿐, 자기 사랑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자기 사랑은 종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노예로 살던 시절,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주어진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오직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애굽에서는 살인도, 간음도, 도둑질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타인의 권리나 존엄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았으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것이 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 사랑의 굴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은혜가 만드는 사랑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요? 그 답은 그들이 받은 은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들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있노라."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개입하셔서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특히 유월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불립니다.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시고,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는 이 위대한 전환에서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그 사랑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압도적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변화됩니다. 자기 사랑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품게 됩니다.
반대로 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 여전히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몸은 교회에 출석하고, 손에는 성경을 들었으며,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삶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이것은 아직 진정한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육체는 애굽을 떠났지만 영혼은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분명합니다.
첫째, 참된 자유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종은 자기만을 사랑하지만, 자유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의 표지입니다.
둘째, 은혜의 깊이가 사랑의 넓이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깊이 체험할수록, 우리의 사랑도 자기를 넘어 확장됩니다.
셋째, 영혼의 출애굽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외적 환경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나는 진정 출애굽한 사람인가?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경험했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인의 삶이며, 구원받은 백성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