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2장

성경
출애굽기

천국을 약속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22장

물질과 신앙의 긴장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이 가장 빈번하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이 재물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자주 내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 물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물질은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자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본말이 전도된 모습을 목격합니다. 어느새 하나님을 경배하듯 재물을 숭배하게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믿음의 여정이 오히려 물질로 인해 흔들리고 시험받는 순간, 그 재물은 이미 우리 삶의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노동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명하시며 성실한 노동을 적극 권장하셨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얻는 정당한 소득을 인정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까지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소유권의 신성함

오늘 본문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사유재산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실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재산을 율법으로 철저히 보호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시내산에 이르게 하신 후, 하나님은 십계명과 함께 구체적인 생활 규범을 제시하십니다. 그 핵심 부분이 바로 재산권 보호에 관한 규정입니다.

이는 미래를 내다보신 섭리적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재산이 형성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겠지만, 또 어떤 이는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미리 내다보시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2:1)

주목할 점은 배상 비율의 차이입니다. 소는 다섯 배, 양은 네 배로 갚게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소가 양보다 훨씬 비싸고 기르기도 어려운데, 왜 더 무거운 형벌을 정하셨을까요?

이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를 기르는 데는 막대한 노동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소는 농경 사회에서 생산 수단이자 생존의 도구였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엄중한 처벌 규정은 공동체의 질서를 확립하고, 타인의 노동과 생존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세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피해까지도 명확히 규정하십니다.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출애굽기 22:5)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지만, 가축은 주인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잠시의 부주의로 가축이 이웃의 농작물을 훼손했다면, 자신의 소출 중 최상품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과실이라 할지라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타인의 노동과 재산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합니다. 애매한 상황을 미리 규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도모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빛납니다.

약자를 품는 공의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은 단순히 재산권 보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관심은 사회적 약자를 향합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출애굽기 22:25-27)

농경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어떤 이는 축복받은 수확으로 부를 축적하지만, 또 어떤 이는 질병, 재해, 가장의 죽음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빈곤에 빠집니다. 게으름이나 방탕함이 아닌, 순전히 환경적 요인으로 생겨나는 과부와 고아, 그들이 바로 사회적 약자입니다.

하나님은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시면서도, 그것이 약자를 짓밟는 도구가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는 명령, 유일한 외투를 전당 잡았다면 밤이 오기 전에 돌려주라는 세심한 배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입니다.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는 선언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신음 소리를 직접 들으시고, 그들의 편에서 서시는 분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약자의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약속의 실재

출애굽기 22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한복판에서 이미 가나안 정착 이후의 삶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놀라운 계시입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부터,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실 때부터, 홍해를 가르실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가나안이 있었습니다. 시내산 광야에서 농사와 목축, 재산 관리에 대한 법을 주시는 것은, 약속의 땅이 이미 확정된 미래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 율법을 주시며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너희가 가나안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양 떼와 소 떼가 번성하며, 포도원이 열매를 맺을 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미래를 그려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영민한 백성이라면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미래를 확정하셨구나. 가나안은 꿈이 아니라 약속된 현실이구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당장의 갈증과 배고픔, 광야의 메마름에 압도되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이 떨어지면 원망했고, 양식이 부족하면 불평했으며, 길이 험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쳤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종 모세를 돌로 치려는 극단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미련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성경은 곳곳에서 천국을 증언합니다. 이 땅의 순례가 끝나면 영원한 안식이 있고, 눈물이 없는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심합니다. "죽어봐야 안다"는 냉소적 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는 회의적 질문, 이것이 바로 광야에서 가나안을 의심했던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법을 주신 것처럼, 오늘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십니다. 천국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확정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 보증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 삶에 새기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첫째, 물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정당한 노동과 소유는 인정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재물이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신앙을 잃게 됩니다.

둘째, 약자 보호는 신앙 공동체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듯, 우리도 소외된 이웃의 아픔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입니다.

셋째, 천국은 이미 보장된 우리의 미래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의 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십니다.

이미 약속받은 천국 백성답게,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으며, 믿음의 눈으로 영원을 바라보는 담대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광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통과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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