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권리의 경계
출애굽기 25장
첫 의도의 중요성
영화 '부당거래'에서 배우 유승범이 남긴 대사가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 대사가 오랜 시간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호의가 어느새 당연한 권리로 변질되는 순간, 관계의 본질이 왜곡됩니다.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받던 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베푸는 이의 형편이 어려워져 이전만큼 주지 못할 때, 받는 이는 감사보다 원망을 택합니다. 기다림과 이해 대신 불평과 요구가 자리 잡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관계는 베푸는 이의 선한 마음마저 메마르게 만듭니다.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긍휼하신 배려를 이해하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 품으셨던 마음과 의도를 깊이 헤아려야 합니다.
성막의 참된 의미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들을 건져내시고 홍해 바다를 갈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길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3달 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세부적인 율법과 말씀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언약의 피를 가운데 두시고 이스라엘과 언약 체결식까지 마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으라 명령하십니다.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
이 말씀의 처음 의도와 생각을 잘 받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고"라는 이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성전을 짓고 난 이후에는 하나님이 성전 안에서만 계신다고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소부재하시며 온 세상 만물 가운데 좌정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충분히 배려하셔서 "내가 성막 속죄소 위에서 너희들을 만나주겠다"고 친히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하나님의 배려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 의도를 오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성전 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계신다고 여겼습니다.
이로 인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전을 될 수 있는 대로 화려하게 짓습니다. 중세시대에 지은 성당들이 대단히 화려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모든 고통은 고스란히 성도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베드로 대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팔아버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성도들이 심각한 고통 가운데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중적인 성도들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전 안에서는 경건한 척, 겸손한 척하며 살다가 성전 밖을 나가면 사람이 변합니다. 성전 밖에서는 갖은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데 교회 안에 들어와서는 겸손하고 무릎 꿇는 이중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약궤와 속죄소
하나님께서 성막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출애굽기 25:10-11)
언약궤의 재료는 조각목, 즉 시팀나무인 아카시아나무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심하게 뒤틀려 있고 옹이가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궤짝으로 만들어 놓으면 곳곳에 옹이가 파여있는 흠 때문에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궤짝을 만들고 금으로 다 둘러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뒤틀려 있고 옹이 같은 흠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금으로 싸고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출애굽기 25:16)
여기서 증거판은 십계명의 두 돌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써서 주실 돌판 두 개를 언약궤 안에 넣어두라 말씀하셨습니다. 뒤틀려 있고 흠이 많은 우리를 금으로 싸고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성막 가장 깊은 곳, 휘장으로 가려진 지성소 안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언약궤 위에 속죄소를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애굽기 25:17)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애굽기 25:20-21)
언약궤 위에 속죄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들어와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사하며, 거기서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막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첫째, 성전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 그리고 회개에 있습니다. 언약궤 안의 돌판은 말씀의 중요성을, 속죄소는 기도와 회개의 필요성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유희나 친목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과 그분의 긍휼하신 배려를 균형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 연약한 우리를 위해 성막에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제한이 아닌 사랑의 표현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영적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실 때 보이신 거룩한 분노를 기억하며,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본질적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뒤틀린 조각목 같은 우리를 순금으로 감싸시고, 그 안에 말씀을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