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출애굽기 27장
시작의 중요성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유되는 보편적 지혜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까지 올바르게 맞춰진다는 이 진리는 인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에게 첫 직장은 사회생활의 초석이 됩니다. 어떤 직장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평생의 자신감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첫 월급의 설렘, 첫사랑의 떨림은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았던 첫 목회자, 처음 맡았던 봉사, 첫 구역장의 모습은 평생 가슴에 새겨지는 영적 이정표가 됩니다.
성막의 첫 구조물, 번제단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구조물에 대해 설명합니다. 성막은 크게 성막 안과 밖으로 구분되며, 성막 안은 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나뉩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고,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가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속하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휘장으로 구분된 성소에는 등잔대와 분향단, 그리고 떡상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거룩한 기물들을 만나기 전에, 성막 뜰에 들어서는 모든 이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번제단입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오 규빗, 너비가 오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출애굽기 27:1-3)
조각목으로 제작되고 놋으로 싸인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뿔 모양으로 돌출된 이 부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이 뿔을 붙잡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훗날 솔로몬의 왕위를 찬탈하려던 아도니야가 형세가 불리해지자 성전으로 도망쳐 제단 뿔을 붙잡아 생명을 부지한 사건은 번제단이 지닌 구원과 생명의 상징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번제단의 더 본질적인 기능은 속죄 제사에 있었습니다. 성막에 들어오는 모든 이는 짐승을 끌고 와서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 안수를 통해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고, 그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린 후 번제단에서 완전히 태워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모든 이가 반드시 거쳐야 할 회개의 자리였으며,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으시고 속죄를 선포하시는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회개의 본질
왜 하나님은 성막 뜰에 들어서는 모든 이가 번제단을 먼저 만나도록 하셨을까요? 이는 명확한 영적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번제단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성소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속죄와 사죄, 그리고 회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필수 관문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회개의 종교입니다. 죄를 직시하고 지적하며, 그것을 고백하게 합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이와 다릅니다. 그들은 죄를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축복을 약속합니다. "이런 재물을 바치면, 이런 의식을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기복적 신앙이 그들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은 철저히 다릅니다. 뿌리 깊은 죄성부터 은밀한 속사람의 죄까지 낱낱이 토설하고 회개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인을 그대로는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고 그 짐승을 번제로 드렸던 것은 바로 이 십자가 대속의 예표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본질적 기능은 무엇입니까? 친교와 교제, 식탁의 나눔도 귀하지만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사명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발에 먼지를 묻히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번제단을 먼저 만났듯이, 우리도 주일 예배에는 한 주간의 죄를, 새벽 제단에는 어제의 허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첫걸음이 바로 서야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가 가능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를 기억하십시오. "회개하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 이 준엄한 선포에 수많은 무리가 요단강으로 나아와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을 예리하게 찌릅니다. 성경을 펼칠 때마다, 찬양의 가사 한 구절마다 성령의 감동이 우리 마음을 두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증거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실 때 우리는 말씀 앞에서, 기도 중에, 일상의 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게 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걸음은 언제나 회개입니다. 번제단이 성막의 입구에 있듯이, 회개는 영적 여정의 출발점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합니다.
둘째, 교회의 본질은 회개와 예배의 공동체에 있습니다. 친교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명은 함께 모여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번제단이 성막의 중심이었듯이 회개가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령의 감동은 끊임없는 회개로 나타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찬양할 때, 기도할 때 느껴지는 거룩한 찔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의 증거입니다.
매일 아침 주님 앞에 서는 우리가 먼저 할 일은 회개입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그 날은 주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복된 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