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위임의 조건
출애굽기 29장
형식 너머의 의미
복잡한 형식과 절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까다로운 형식을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형식과 절차가 생겨난 이유와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설명해 준다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집니다. 의미를 이해하면 마음이 움직이고 동기부여가 됩니다. 일단 마음이 움직이면 아무리 복잡한 절차라도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됩니다.
구약의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깊은 영적 의미를 담아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제사장 위임식도 처음에는 그 복잡함에 당황스럽지만, 깊은 속뜻을 이해하고 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귀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출애굽기 29:1)
제사장 위임식에는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각각 특별한 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결 - 첫 번째 조건
위임식의 가장 중요한 첫 절차가 시작됩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출애굽기 29:4)
위임받을 제사장을 물로 깨끗하게 씻기는 것이 첫 번째 절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사나 능력을 가진 사람을 택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여호와 앞에서의 성결입니다.
제사장의 핵심 직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고 연결하는 일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도 죄가 하나님과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훗날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역할을 완성하시지만, 구약시대에는 인간 제사장이 먼저 정결해야만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할 수 없습니다. 수돗물의 파이프라인이 오염되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듯이,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백성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통로이기에 반드시 깨끗해야 합니다.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출애굽기 29:10)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행위는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겉으로 씻었어도 내면의 죄까지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수송아지에게 안수하여 속 깊은 죄까지 토설하게 하셨습니다.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출애굽기 29:14)
제사장의 죄가 전가된 짐승은 아무도 먹을 수 없게 하고, 완전히 태워 속죄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제사장 성결의 첫 단계입니다.
헌신 - 두 번째 조건
이제 준비한 양 두 마리 중 첫 번째 양을 사용합니다.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애굽기 29:18)
번제는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타다가 중간에 멈추면 그 제사는 무효가 됩니다.
양 한 마리를 완전히 태워 번제로 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자신을 철저하게 헌신하여 하나님께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제사장에게는 자기 시간이 없습니다. 자기 가정보다 하나님의 일이 우선이며, 개인적 즐거움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남는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결단이 번제의 본질입니다.
순종 - 세 번째 조건
마지막 한 마리 양이 남았습니다.
"너는 다른 숫양을 택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출애굽기 29:19-20)
양의 피를 오른쪽 귓부리,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듣고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피를 바른다는 것은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귀에 피를 바르는 것은 이제부터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 듣겠다는 결단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상과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였지만,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손과 발에 피를 바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순종의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정욕과 욕심을 위해 사용했던 손과 발을 이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과 길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서약입니다.
이렇게 제사장 위임식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나타납니다: 성결, 헌신, 그리고 순종입니다.
이는 오늘날 목회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상의 학벌이나 학식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입니다. 전적인 헌신과 희생이 뒤따라야 하며, 완전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회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선포했듯이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제사장이며, 교회 공동체의 리더이고, 세상에서도 크고 작은 일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서려면 먼저 성결해야 합니다. 물로 씻고 속죄제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매일 회개하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있는 상태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전적인 헌신 없이는 온전한 섬김이 불가능합니다. 번제처럼 완전히 태워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남겨둔 것이 있으면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듯이, 우리도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 귀와 손과 발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순종의 삶이 제사장적 삶의 본질입니다.
오늘도 제사장 위임식의 장면을 떠올리며, 성결과 헌신과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